어릴적 아버지께서 출근 전, 어머니가 태워주시는 달달한 인스턴트 커피 한잔 끝에 남은 한모금을 마셔보겠다고 그리도 낼름낼름 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학교 시절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소리에 인스턴트 커피를 우유에 태운뒤, 신나게 흔들어서 달달한 맛으로 꿀꺽 마셔대던 일이며, 대학에 가서 자판기 커피와 커피숍 분위기에 취해, 삐삐치고 전화를 기다리며 마시던 그 시절의 비엔나 커피들은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실, 처음 라떼라는 커피를 마셔본게, 2000년 샌프란시스코 여행에서 호텔 1층 스타벅스에서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자판기 밀크커피 맛을 흉내내려 설탕을 듬뿍 담아서 마신 정도?
오히려, 커피빈에서 마시던 챠이라떼가 나에겐 더 맞았을거라 고백할 정도로, 사실 하루에 너댓잔씩 마셔댄 커피는 그냥 카페인 흡수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호주 이민을 통해 만난 이곳에서의 라떼, 플랫화이트는 과연 천하의 스타벅스의 침공을 거뜬히 물리치고도 남을 만하였고, 그 고소하면서도 진하게 몰아치는 커피의 일품 맛에 감탄을 금할래야 금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으로 오늘도 나를 설래게 해주고 있다.
아마도, 이민 초창기에 Zarraffa's Coffee 본점이 집 근처에 있었기에, 아침부터 로스팅되는 커피 볶는 고소한 향내에 취해, 아내와 출근부에 도장찍듯 다닌 덕분에 제대로 호주식 커피 라이프를 우연히 시작하게 된 덕분일 수도 있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아침을 시작하며, 함께 대화를 이어가며, 많은 부분들을 나눌 수 있기도하고, 당연히, 카페인 녀석은 시키지 않아도 본연의 성실함 덕분에 정신을 어지간히도 꾸준히 자극해준다. 하루를 제대로 시작할 때라고.
에스프레소 진액에 무엇을 어떻게 추가하느냐에 따라, 기호에 맞게끔 많은 커피 variation 이 나오지만, 나는 주로 아침에는 strong flat white (샷 추가) 로 시작하고, 저녁에 커피가 마시고플 때는 long black (에스프레소 원액에 뜨거운 물 섞은 녀석 - 한국식으로는 아메리카노) 을 즐기는데, 입맛이란 것이 커피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주 가는 커피가게의 원두, 우유의 조합이 아닐 경우에는 어색함을 견디기 어렵다.
오늘 같은 피곤한 오후, 식곤증이 잠시 몰려오던 때에, 동료 변호사가 작은 플랫 화이트 하나를 가져다주었는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커피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남은 하루가 또 기다린다. 영혼의 묘약으로 잘근잘근 지배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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