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살아가는 많은 분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주제별로 모아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해당 설문목록과 각 설문들에 대한 결과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으니, 1분씩만 투자 부탁합니다.

설문 별 참여자가 500명 넘어가는 그 날 까지

박창민 변호사의 1분 설문 가기

 

호주변호사 박창민

호주, 대한민국에서 6,828 km 이상 물리적으로 떨어진 머나먼 타국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12만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자리를 잡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www.hojuro.net

박창민 변호사는 Queensland 변호사 협회 (QLS - Queensland Law Society) 공인 이민법 스페셜리스트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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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2일, KatsuCo 협찬으로 이루어진 Brisbane Meetup 행사에서의 1시간짜리 발표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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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문항이 많아서, Youtube 설문기능이 아닌, 아래 Google Forms 링크를 이용해서 응답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딱 1분만 투자하시면 됩니다. 응답자료들은 소중하게 모아서, 컨텐츠 준비와 관련 법률서비스 준비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문결과는 공개되므로, 나와 주변, 그리고 여러분들의 의견이 어떤지 함께 보시면 어떨까요?

설문 참여하기 (딱 1분으로 충분합니다. 진짜!)

참여하신 분들의 소중한 결과는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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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결혼하고서 3년차에 들어가며, 첫 아이의 백일을 넘기고, 2년 전세 계약이 끝나갈 즈음, 그 당시 대한민국은 IMF 파동을 거쳐 회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였다. 아직 당시 서울 집 값은 폭락 장 이후의 고요함이 여전한 상태.

강남역 우성아파트 25평에서 9500 만원 전세를 시작했던 우리 신혼집은 2년 남짓 한 새, 무려 1억 5천만원을 집주인이 부르는 형편이었다.

차라리 집을 사버리자 라는 마음에 당시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서초구 잠원동을 소개받고, 잠원동 한강아파트 31평형을 2억 3천만원에 구매했다. 제일은행에서 융자 6천만원을 끼고서.

내 집 이란 것이 생기고 참 좋았었다. 그리고, 한남대교를 바로 끼고 있고, 강남 고속터미널과, 고속도로를 타고서 양재동 사무실까지 한번에 출근 가능한 최고의 교통환경은 단지 '강남' 이라는 사실을 떠나 너무 편리하고 좋았었다.

그러다 불현듯 불어닥친 이민병.

미련을 두었다간 쉽게 물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단번에 깔끔하게 집을 팔았다. 4억 5천만원에 잠원동 한강아파트 3동 OOO 호를. 3년 만에 2억원 넘게 남겼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었다. 그리고, 꽁으로 돈이 생긴 마냥 참 좋았었다.

세월이 흘러, 이 녀석이 지금 현재 시가로 대략 25억원 가량 한단다. 열심히 살아온 지난 18년 동안 금전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고, 나름대로 열심히 자산을 불려온 건 맞는데, 약간 기운 빠지는 현실이다.

역시 부동산은 파는게 아닌건가? 오늘 집 값이 사실 알고 보면 제일 싼 건 게다.

그래서, 지금은 절대 안 팔기로 작정하고, 하나씩 늘여가고 있다. 이미 지난 2년 간 자산가치 측면에서 재미는 충분히 보고 있지만, 아직 멀었어. 잠원동 한강아파트 생각하면 절대 부동산은 팔아서는 안 되는 녀석이다. 게다가, 인구가 계속 늘어가는 이곳 브리즈번, 그리고 그 중 프리미엄 suburb 라 개인적으로 믿고 있는 이 동네 만큼은.

금리야 시장원리에 따라, 오르고 내리고 하겠지.

한편, 호주 와서 빈 땅을 사서, 집을 짓고, 10년간 살다가 팔아버린 집도... 7년 사이, 2배로 올랐다. 역시 오늘 집 값이 제일 싼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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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순전히 2022년 2월 28일에 Brisbane 땅에 살며 홍수를 겪어가고 있는 시민 입장에서 남기는 푸념에 불과 함을 밝힘.

때는 바야흐로 2010년, 막 신입 변호사가 되고서 첫번째 가족 여행으로 Melbourne 을 가게 되었던 2010년 12월 이었다.

Queensland 는 12월에 들어, 비가 계속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으나, 당시 살고있던 Gold Coast 주변지역은 하천이나 강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별로 없었기에 불편함과 불쾌함 정도가 수일째 이어지는 정도였었다. 그리고, 당시 기억으로는 언론 등을 통해 주정부에서 특별히 대피령이 내렸던 때도 아니었다.

덕분에 집을 수일이나 비우며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이었을테고.

다섯식구와 한국에서 오신 엄마, 이렇게 여섯이서 멜번 땅을 밝고 맑은 하늘과 밝은 햇살을 만끽하고 있을때, 뒤늦게 Gold Coast 에 살고있던 여동생이 이틀 뒤에 합류를 하였다.

공항에서 픽업을 하는데, 첫 마디가 "와, 여기는 날씨 좋네? 우리는 아직 계속 추적추적 비오는데..."

그렇게, 일주일 못미치는 여행을 마치고 2010년 12월 31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비오는 가운데서 맞이하는 2011년 새해.

연말연시 휴일을 마치고, 회사 복귀를 할 때까지 계속해서 비가 왔다. 무려 2-3주에 걸친 끝없는 비.

결국, 70여년 만의 첫 홍수와 범람이랍시고 온 언론이 flooding 대피령을 내보내고, Brisbane CBD 로 출근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복귀를 하게 된 것이 바로 11년 전 일이다.

그런데, 기껏 나흘 동안 퍼부은 비 때문에 이곳 Brisbane 은 또다시 flooding 으로 수만 채의 가구가 이미 flooding 피해를 보았고, 곳곳이 정전과 도로단절로 인해 큰 피해를 보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지만, 10년 넘는 사이 크고 작은 홍수 재해의 전조가 계속해서 이어져왔었는데, 이 정도로 준비와 대처가 안 되었던 것인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토요일 오후 2시의 미디어 발표를 통해, 앞으로 24-30시간 가량 비가 더 올 것이나, 침착하게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기다려달랬다.

일요일 오전 11시, 미디어 발표에서는 앞으로 24시간이 가장 위험한 시기 일 거란다.

그 어느것 하나 맞춘 적이 없다. 시간이던, 강우량이던, 피해예측이던.

이번에 또다시 class action 이 터진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전혀 없고, 인재라 주장하는 이들이 나오더라도 손 들어줘야 할 판 아닐까 싶다. 제발, 과거를 통해 무언가 배워서 좀 더 나은 오늘과 내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100년에 한번 이라던 사태가, 이미 100년에 두번이 되었고, 적어도 이곳에 살고있는 나에겐 20년에 두번씩이라는 엄청난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climate change, 엘리뇨, 라니랴 로 퉁치기엔 사람들 일상이 너무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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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민들 입장이야 어디 이루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언론을 통해 정리된 푸틴 대통령의 발표 (라 쓰고, 사실은 개전 선고) 를 보았을 때, 애초에 외교로 해결되지 않을 만한 문제였던 건가?

현대 전쟁에서 어느 일방의 폭망을 위해 끝을 보겠다는 심산일지는 모르겠고, 그 전에 어떤 형태로든 외교채널을 통해 서방 측의 수습권고와 러시아 측의 수용이 수 주 내에 나오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져보는데, 그 이후에는 또 일이 어찌 되려나.

수많은 국제정치 전문가들이 예전과 달라, 러시아가 얻을 것이 별로 없다는 이유 하나로 이 전쟁은 푸틴의 공갈일 것이라 했었다. (적어도 내가 보았던 유튜브 summary 들은... 이래서 유튜브를 믿어서는 안되는 건가?)

와중에 이곳 호주 총리 Scott Morrison 은 러시아를 용납할 수 없다는 강공 메시지를 퍼부었으나, 그래서 뭐 어쩔거라는 대안은 없는 속 빈 메시지 이상도 아닌 듯 해서 씁쓸하다. 선거 공약만도 못 한 미디어 뉴스 한 꼭지 정도가 아닌가?

자, 개인 입장에서 내 포트폴리오는 바닥으로 내리 꽂히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물타기가 다시 펼쳐지는 순간. (하루 -5.25%, 이거 실제 상황 맞는거니 나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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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20대 일 거라 생각했었다. 언제까지는 젊은 20대 사장 소리를 들을 줄 알았고, 꼰대 주름잡는 아저씨들을 뛰어넘어 세상을 바꿀 거라 막연히 기대만 했었던 것 같다.

어느새 40대 중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큰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둘째 아들은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막둥이 딸아이도 이제 8학년. 동갑내기 아내도 흰 머리가 늘어가고 있고, 나는 파뿌리가 옆머리를 뒤엎은지 오래다.

한국의 국민연금과 완전 동일한 국가보장 연금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호주에서 (물론, agend pension 자격자가 될 경우, 해당 혜택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이걸로 생활이 보장될 리는 만무할 뿐이고) 급여생활을 하며, 열심히 스스로의 은퇴시기를 준비해야 하는 과정에서 superannuation 은 정말 우수한 제도이다. 적어도 고용주의 10% 강제부담 적립액은 compounding 효과로 인해, 적어도 수십년 일을 제대로 하며, 꾸준히 쌓이게 될 때, 큰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호주에서 급여생활을 시작한 건 2010년부터니까, 대략 12년 가까이 적립된 superannuation account balance 를 올해 본격적으로 털어먹기로 마음 먹었다.

운용사에 맡기는게 아니라, 쌓인 돈을 내가 굴려보겠다는 심산으로 SMSF 를 설립하고, SMSF 통장개설, ESA 등록 등 관련 절차를 밟는데만 한달 가까이 걸린 듯 하다.

고스란히 내 책임이 되게 될 나의 은퇴자금. 현명하게 잘 투자해보자.

꿈은 크다. 칼 은퇴하고서, 하고싶은 공부 원없이 해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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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3일, 호주 연방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현재 기술이민 현황과 호주 시장에서의 기술수요에 대한 상관관계, 그리고 그로 인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한 inquiry 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1차로 3월 31일까지 관련 업계로부터의 다양한 목소리를 submission 의 형태로 받을 것이고, 이후, 공청회와 전문가 의견에 대한 난상토론 등이 이어질 터인데, 그 결과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의 물꼬가 터질 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예상 자체가 섵부르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담은 예상을 해볼 필요는 있으니까.

영상 내에서 자료화면으로 띄운 파워포인트 화면을 아래에 살짝 담아본다. 이걸 찾으며 따로 연락주는 분들도 있기에 (예상에 불과하므로, 사실 큰 의미는 없는 슬라이드이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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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과 문화, 정말 중요하다. 특히나, 살아온 배경과 배워온 환경, 분야가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을 때에는 특히나 그러하다.

2005년, 호주 땅을 밟고서, 1년 즈음이 되었을 때, 젊은 나이에 무언가 전념할 생업이 없어서는 안되겠다는 심정에 구직활동을 시작했고, 전공을 살리는게 가장 안전하다 생각하여 브리즈번 지역의 IT 관련 포지션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다닐 때의 일이다. (쓰고보니 무려 15년 전 이야기인 것이야?)

한국에서의 경력 자체가 따끈따끈한 분야였었고, 해당 전공분야는 적어도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서 반드시 예산이 배정되어야 할 만하였기에 좋은 일자리는 꽤 있는 편이었다.

그리하여, 퀸슬랜드 주정부 산하의 각 부처의 보안팀 주요자리에서의 고급 공무원 자리에서 최종 short listed 지원자 자격으로 인터뷰도 꽤 여러번 보았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곳은 바로 호주 퀸슬랜드의 산재공단이랄 수 있는 WorkCover Queensland 의 고위 직급 보안책임자 자리를 위한 인터뷰였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순 없어서, contractor 형태로 계약직 자리 정도)

사람을 불러놓고, 인터뷰어가 셋이나 들어와서 그렇게 이리치고 저리치더니, 대뜸 시험을 보겠다는 것 아닌가.

헐!

subnet mask 를 활용한 Cisco router 의 access control list 관리부터 시작해서, 여러 네트웍 장비, 보안장비에 대한 시험을 꽤 오랜 시간동안 쳤던것 같다.

인터뷰도 끝나고, 시험도 다 끝냈고 (적어도 문제는 다 풀었다), 기분좋게 헤어질 무렵, 인터뷰어 셋이 모두 입을 맞추어 "See you later!"

난 내가 잘해서, 다음에 꼭 다시 보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그 엄청난 superannuation contribution 에 깜짝 놀라며, 은퇴자금은 문제없겠다며 김칫국을 열심히도 마셨었다.

See you later!

우리말로 굳이 하자면, 나중에 우리 밥이나 한끼해요! 와 같은 말.

헤어질때, 그냥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다시 만날 기약이 아니라.

살아가며 만나는 그 수많은 인연들을 모두 하나같이 다 챙길 수는 없다. 이해관계에 따라, 또는 마음가는 그 인정씀씀이에 따라, 더 눈이 가는 인연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인연들도 있을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적어도 나는 우리 밥이나 한끼해요! 를 습관처럼 뱉으려 하지는 않는다. 꼭 밥 한끼 해야할 사이에서만 밥 한끼 하자고 한다. 그러니, 어떤 형태로든 나와 인연이 닿는 분들 중, 밥 한끼 제안받은 분들이라면, 나중에라도 꼭 연락이 닿아 서로 밥 먹으며, 못다한 이야기들 나누고 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의 삶도 무려 16년이 되어간다. 여전히, 나는 See you later! 를 함부로 내뱉지 않는다.

Thanks. Bye.

다시 볼 기약을 할 수 없다면, 나에게 이 이상은 무리이다.

아내는 이런 내가 굉장히 건조해 보일 수 있고, 싹퉁바가지로 보일 수 있다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내 입으로 뱉은 말은 지키고 싶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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