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봐야 한시간 남짓한 인터뷰에서 회사가 바라는 인재를 한번에 척/탁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10여년 간의 로펌 경영과정에서 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벤쳐기업 경영 시에도 똑같이 느낀 점이다.
누구나 첫 만남, 소개팅 등에서는 최선을 다해 잘 보여지고 싶기 마련이고, 눈에 콩깍지가 씌어 본면을 못 보게 되는 경우들이 분명히 있다.
잘 쓰여진 cover letter 역시 본인이 쓴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짧게는 6학기, 길게는 더 나아가 학부과정까지 들여다 보게 될 성적표에서 행간을 읽을 수 있고, 당사자의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이제까지는 사람이 아쉽다는 이유 만으로 굳이 불편할까봐 성적표를 필수 제출서류로 명시하지는 않았었는데, 큰 오산이라 생각한다.
이력서 랍시고 본인이 직접 각색하여 내려쓴 자료보다 타인의 냉정한 평가로 남겨진 academic transcript 는 말 그대로 투영하여 쓰여진 보물처럼 값진 자료니까.
금년 초에도 많은 이들이 이력서를 넣으며, 지원을 하고 있다. 자, 성적표 필터링을 거쳐서 살아남을 이는 어느 누구일 것인가?
2020년 한 해의 시작은 그 어느때와 달리 정말 자신감과 단호한 결심에 가득찬 그런 순간들이었다. 이는 2019년 중국 출장에서 느낀 것들, 그리고 보고 온 그 수많은 기회들, 그리고 세계인을 상대로 자신있게 펼칠 수 있는 호주라는 나라의 매력 이런것들이 끝없는 소재로 받쳐주었기 때문이고, 한달 가까운 긴 시간을 고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추억들로 가득 채운 충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힘은 보잘것 없고, 계획의 일부라도 건져볼 요량 조차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짐을 느끼게 되었다. 이름하여, 코로나 바이러스.
사실, 빌게이츠를 비롯하여 꽤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미래재앙 중 하나로 바이러스를 꼽아왔었고, 실제 Contagion 과 같은 영화까지 미리 10년도 전에 나왔었던걸 생각한다면, 내가 부족했던 것이고, 준비가 소홀했던 거라 할 수 있다. 적어도 3월부터 6월까지 모두가 적극적 수비태세를 취하고 있을 때, 장기전이 될 수 있음에 제대로 대비했다면, 2020년 하반기는 조금 더 생산적일 수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지난 일은 후회할 대상이 아니라, 가르침의 대상이어야 할 뿐이고, 내 현재가 가장 큰 적은 어제의 나 라는 말이 있지않나.
그래서, 2021년, 드디어, 전국구 로펌임을 자부하는 우리들은 멀리 도약하여, Western Australia 로 나아간다. 이미 일을 맡겨주고 계신 많은 분들께 보답하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찾아간다.
2021년 달력을 연 이래, 이미 한 해의 20% 가 지나갔다. 무섭지 않은가? 시간은 쉼없이 내달리고 있는데, 나만, 우리만 제자리에 있어서는 곤란하다.
경력직원을 뽑을 때, 흔히 겪게 되는 또는 다른 이들도 겪을 수 밖에 없을 만한 일이다. 지원자의 이력서와 커버레터에 드러난 본인소개와 과거 경력이 얼마만큼 뻥튀기가 되어있는지 여부는 그 사람의 성격에서 드러난다. 문제는 내부 직원의 직접 소개 등을 통한 인연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성격을 종이 몇장과 linkedin 에 본인이 적어놓은 이력들, 그리고 지인들이 적어놓은 찬사들 만으로 어떻게 알 수 있겠나?
몇몇이들의 스스로 적어놓은 치적을 보고있자니, 참 웃지못할 이력들을 보게 되는데, 안 부끄러운가 몰라. 한 다리만 건너면, 다 그 내막을 알고있는데 말야.
설마, 인터뷰 고작 30분 정도로 지원자의 성격과 치적을 모두 알 수 있다고 자만하는건 아니겠지?
때는 아마 2012년 경이었던것으로 기억된다. 특정 로펌에서 법률사무원으로 고작 수개월 일해본게 전부인 그의 이력서에는 개인상해 법무분야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를 경험해보았다는 수많은 내역들이 적혀있었고, 이제 갓 로스쿨 졸업을 앞 둔 이에게 걸맞지 않은 경력이 마치 본인 것인 양 적혀 있었다.
어디, 선수 앞에서 이런 뻥을...
그렇게, 그 이력서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했고, 그 이후로 해당자는 우여곡절 끝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비로소 정착을 겨우 한 것으로 소식이 들려온다. 그런 풍문이 들려오는 것만으로도 망하지는 않은 듯 하니, 뭐 본인의 뻥튀겨진 이력을 믿어주는 이들이 일부 있는 듯.
자, 이 양반 같은 경우에는 이력서에 드러난 밑천을 꿰뚫어보았기에 우리가 직접 고용해보고, 아뿔싸를 뱉어낼 만큼 직접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어볼 때, 우리가 직접 손수 당해보며 처절하게 피를 보아야 했던 실패한 고용사례가 얼마나 많았을까?
본디 자질이 부족하여, 능력이 부족하여, 자세는 되어있을지라도 못 따라오는 이들은 괜찮다. 그건 그 인력에 대한 적절한 포지션이 없다는 것 뿐이니까. 그리고, 그냥 기분좋게 보내주면 된다. 본인 자리가 없는거니까.
하지만, 없는 자질을, 능력을 포장해서 우리 눈을 속인 이들이 문제다.
직접 겪어본 역대급 인물이 있으나, 의외로 좁은 이곳 인재마당에서 화살이 특정인을 향해서는 곤란한 법이므로, 그냥 일반론으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포장능력이 대단하여 채용과정을 통과한 이들이 얼마간의 시간과 업무태도, 업무 성과에 대한 실적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시점이 도래하면, 일명 드러낸 바닥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조직의 평가가 충돌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에 대한 반응이 참 다양한데, 변명으로 일관, 뜬금없는 딴소리로 소재전환 시도, 정직한 사실고백과 실토, 앞으로에 대한 의지의 표현, 배우는 자세와 열망을 보이는 것, 입만 나불나불대며 말이 앞서는 이, 바닥이 들통나자마자 잠수타는 이, 허언증으로 덧칠을 하는 이 등으로 참 다양하다.
바가지에 담긴 물을 다 쓰면, 다시 물을 받으면 된다. 수도꼭지를 틀던, 우물에서 물을 퍼내던, 빗물을 받건. 그 자세가 중요하고, 다시 담은 물을 제대로 적재적소에 잘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 누가 끊임없이 샘솟고, 문지르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알라딘 램프를 바라는건가? 그런 이기적인 자세의 고용주라면, 애초에 함께 일할 수 없지않나?
설령, 최초 본질 이상으로 포장된 것들도, 이후 하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기회가 주어져서, 본인이 정해놓은 또는 바라던 틀 안에 정교하게 잘 담아넣고, 가꾸어서 스스로 내실이 튼튼해지는 이들도 적지않게 보아왔으니까.
하지만, 빵빵한 과자 봉지에서 바람 빠지듯, 끝도 없이 밑바닥만 치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며 주변을 탓하는 이들은 반드시 걸러져야 한다.
나는 그래서 추천서를 정말 아껴서 써준다. 내 눈까지 의심받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 밑에서 배우는 이들에게 까칠하고, 까다롭고, 기대치가 높다 보여질 지 모르지만, 그렇게 수년을 함께 일해보자. 과연,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스스로 알게 될 테니까.
그 사이, 나 역시 더 발전해간다. 그리고, 비로소, 그 팀의 능력은 얼마나 배가되었을지 나와 팀원들, 조직원들, 직원들, 동료들은 더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조직을 만들어가고 싶다.
이런 여러 생각들을 해보면서, 과거의 나는 어떠했을까? 지금 내가 평사원 또는 경력직으로 임원 자리를 노려야 하는 입장이라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런것들을 고민해보았다.
스스로도 돌아보고, 내가 지금 오너 입장에 있다는 것을 당연히 여길 것이 아니라, 이것이 마지막 자리라 여길 것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고, 기여하고, 발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글을 마무리한다.
일을 하다보면, 맡은 일이 내 성향과 맞지 않거나, 초심과는 달리 어느새 지쳐감에 따라, 열정과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못함으로 인해 침체되는 분위기가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
나 역시 뒤돌아보면, 2012년, 첫 로펌을 그만둘 때, 그러하지 않았던가? 회사의 방침, 의뢰인에 대한 대우 등 이루말못할 고민들이 하늘까지 닿았던듯 하다. 물론, 능력보다 더 많은걸 욕심내다가 주저앉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법무법인으로 전환한지 만 6년. 그 전 개인사무실까지 포함한다면, 만 8년간의 로펌 경영을 해오고 있는듯 하다. 철저한 분업을 통한 공동협업이다보니, 혼자서 모든걸 고민하는 부담은 없었지만, 그 기간 사이에 정말 많은 직원들을 보아왔고, 경험한 듯 하다.
그 중 정말 다시는 만나고 싶지않은 역대급이라 불리울만한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잃어버린 열정과 흥분 탓인지, 아니면 애초에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인지, 새로운 꿈과 희망을 쫓느라 손에 쥐어진 업무를 등한시 한 탓인지, 세상을 피해 사무실이란 공간에서 방어막을 쌓는데 여념이 없었기 때문인지, 한결같이 일 따위는, 의뢰인은, 안중에도 없었다 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은지.
사람은 남겨놓은 흔적들로 기억된다. 일을 맡겨준 의뢰인과의 인연 따위는 내팽개치고, 새롭게 일을 넘겨받을 동료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로 기억되는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앞서 말한 역대급 직원들이 여럿 있다.
다시는 만나고싶지 않다. 그들이 남겨둔 발자취의 악취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요즘같은 세상에 모를 수가 있나. 한결같은 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안쓰럽다. 그 주변인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될까봐.
세상살아가며 남녀간에 이런 상황이었다면, 이들은 소위 '쓰레기' 라는 평가로 도배가 되고도 남지않았을까?
남겨둔 발자취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원리/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생각한다.
작은 일 하나에도 충성을 다하고, 내가 가진 달란트를 쏟아부을 수 있는 마음가짐. 내일 당장 다른 곳에 가게 되더라도, 오늘에 열과 성을 쏟아부었음을 만인이 알 수 있는 그런 모습들.
난 숭미주의자가 아니다. 뼛속까지 한국인이고, 우리 아이들도 한국인으로서의 자기의식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여러가지를 가르치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한국 여행을 자주 가는건 별로. 같은 값이면 여러 곳 다니면서 추억거리들을 쌓는 재미를 더 좋아하니까. 게다가, 한국에서 다행히도 양가 부모님들이 자주 호주를 방문해주실 수 있어서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자라는 과정 중 영향으로 인해, 밑도 끝도 없는 미국에 대한 찬양과 미제선호 분위기에 '익숙한' 것은 사실이다. 왠지, 미국의 동향, 의견, 발언이면 무언가 그럴싸해보였다.
지금이야, 내가 뿌리내리고 살고있는 이곳 호주가 가장 좋다고 여기지만 말이다.
작년 말, 호주 동부를 휩쓴 산불파동은 사실 내 눈 앞에 펼쳐진 일은 아니었고, 마침 가장 절정을 찍는 시점에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기에 가슴 속 깊이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이토록 많은 이재민을 불러온 산불사태가 인재는 아닐까? 정부는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정도의 생각만 했었지. 만약, 우리집이 활활 불타오르는 상황이었다면 그 절망은 어떠했을까?
2020년 2월부터 슬금슬금 퍼지기 시작하던 우한폐렴. 3월부터는 겉잡을 수 없어지더니, 급기야 전 세계적으로 pandemic 이라 부르며, 국경봉쇄 또는 출입국 제한, retail 업계를 비롯하여 public gathering 의 금지 등의 전무후무한,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넘쳐나는 우울한 뉴스들과 갖혔다라는 느낌으로 인한 많은 이들의 감정적 동요는 소위, '술렁인다' 라는 표현이 무엇인지를 실감케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다. 사람의 지나온 경험으로는 감히 상상키 힘들 정도의 급박하게 돌아가는 실황들 앞에서 우리는 전전긍긍 외에 별달리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기껏해야, 집에서 방바닥 긁으면서 stay at home 을 준수하는 것 정도.
열흘 넘게 미국 전역을 들끓게하는 George Floyd 사망 사건은 과거 Martin Luther King Jr. 시절의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카리스마 가득했던 시위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고들 평가받는듯 하다. 시민들, 국민들의 이런 열망과 쌓였던 분노에 대해 현재 보여지고있는 리더쉽은...
이쯤에서 말은 아끼는게 정석.
미국이 이리 될 줄이야!
미국 변호사 라이센스 아래에 펼칠 준비를 하던, 미국 이민 practice 는 일단 당분간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어두어야겠다.
내가 미국 이민 업무를 추가하려했던 이유는 오로지 시장의 needs 때문이었는데.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언제 내가 보아왔던, 기대하고, 준비하던 그 needs 라는 것이 '미국' 이라는 곳을 대상으로 다시 활활 타오를지 기다려보아야겠다.
대마불사 라 했었는데...
초일류 국가라고 스스로 표명하고 표방하던 미국. 어떻게 이 국난을 극복해가는지 기대가 되고, 그 미래에 건투를 빈다.
protest...
라틴 어원을 쫓아가서 보자면, assert publicly 를 뜻한단다. make a solemn declaration. 단지, 소요와 혼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결과를 화합 가운데 이루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