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박앤코의 주력 업무분야 중 개인상해 (personal injury law) 분야가 있다. 이 분야는 민사 상 손해배상 청구 분야의 하나이며, 그 역사와 민사소송에서의 법리 발전에 대한 기여 자체로 상당한 규모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관한 상세한 법적 해설은 법무법인 박앤코의 법률컬럼을 참고하도록 하자.

(해당 컬럼은 10회 연작으로 필자가 직접 작성하는 컬럼이다.) https://parklawyers.com.au/blog/category/compensation-ko/?lang=ko

주의. 어떤 경우에도 이 글을 비롯하여, 필자의 글 또는 영상들은 Personal Injuries Proceedings Act 2002 (Qld) 또는 이에 준하는 타 사법권의 관련 법들을 위배하지 않기 위해 노력함을 밝힌다. 따라서, Queensland, Western Australia 그리고 Northern Territory 관할 지역에서 이 글에 이른 분들이라면, 여기에서 읽기를 중단해주기 바란다.

각각의 개인상해 사건들은 생각보다 상당히 그 진행절차가 까다롭고,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안타깝지만,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손해배상의 의무를 질 가능성이 있는 보험사 (또는 피고인) 와 원고 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원고 (의뢰인) 들이 이러한 오랜 시간동안 사건을 진행해오던 과정 중 담당 변호사 또는 로펌과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상업적 논리가 지배하는 요즘 세상에서 변호사 간 경쟁을 통해 서로의 의뢰인을 뺏고 빼앗기는 일들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의뢰인 입장에서 조금 더 좋은 조건에서 일을 맡기며, 더 저렴한 비용, 더 친절한 변호사, 더 능력있는 변호사, 같은 값이면 더 다양한 서비스 등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권리이자, 소비자로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이랄 수 있겠다.

문제는 이러한 권리의 행사가 과연 똑바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것인가 이다.

2012년 회사를 옮긴 후, 스스로 찾아주신 많은 의뢰인분들 (광고 따위는 일체 하지도 않던 시절) 께 감사하며,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2013년 상반기 처음 광고를 시작해보았다. 그 동안 우리 법무법인의 몇몇 의뢰인들이 안타깝게도 우리와의 인연이 중도 마무리되는 일들이 많지는 않았으나, 없지도 않았다. 반면, 타 업체에서 우리 회사를 지명해주고, 찾아주신 분들은 그 곱절은 된다는 점이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회사의 대표로서,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것들은 없었을까 등을 고민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재발을 방지하고, 서비스의 품질을 올리기 위한 의무를 위해 차분히 앉아 초심, 중심, 진심 이라는 것을 매번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분 해하기 보다, 앉아서 상황을 곱씹어보는 일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건파일 전체를 차근차근 살펴보자니, 과연 이런 분들이 옮겨가는 곳에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이어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언제나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새로 옮겨간 곳에서 인연을 맺을 변호사의 됨됨이 또는 서비스 품질, 법적 지식 등은 내가 논할 부분이 아니므로 당사자 간 풀어가야 할 부분일테지만, 전임 우리 로펌 특급 변호사의 깊이있는 법적지식과 업계에서 쌓아온 명성에서 더불어오는 부가 혜택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 당장의 revenue 가 줄어들 것도 생각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의뢰인을 섬긴다는 입장에서의 법률 서비스 당사자로서의 의무와 자격을 생각할 때, 이런 산술적 실익 계산보다는 모쪼록 그러한 분들 사건들이 잘 해결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와 인연을 시작하셨던 분들이니까.

서비스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다보니, 과거와 같은 브랜드 충성도를 따지는 것은 이제 무의미해졌다고 본다. 물론, 이런 트렌드를 거스르는 매니악 브랜드들이 오히려 더 기세를 떨치는 경우도 있지만 (특히나 IT 및 패션 계통), 적어도 우리 법률 계통에서는 이런 일들은 그리 흔치 않다. 특히나, retainer 형태로 의뢰인의 이어지는 일들에 대한 자문서비스 형태가 아닌, 단발성 사건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변호사 교체, 로펌 교체는 의뢰인의 당연한 권리이며, 이런 권리 행사를 절대 나무랄 수 없다. 다만, 향후 혹시 모를 후회와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변호사 교체, 로펌 교체 이전에 아래 내용들은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듯 하다. 이는 우리 의뢰인이 다른 곳으로 떠나갈 때에도 마찬가지이지만, 타 업체의 의뢰인이 우리 변호사, 우리 로펌으로 옮겨 올 때에도 반드시 고려해 보아야 할 내용들이다.

이 글은 상업적 논리로 작성되는 글이 아님을 천명한다.

변호사 교체를 결정하기 전, 반드시 고려하여야 할 점들

현 변호사
  • 합리적이고 정당한 법적조언을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까?

  • 담당 변호사의 내 사건에 대한 이해도를 제대로 이해해보았는가?

  • 담당 변호사, 로펌의 깊이있는 법적지식, 서비스의 완성도에 대한 big picture 를 고려해보았는가?

  • 당사자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면, 이를 풀기위한 진솔한 대화는 있었는가? 아니, 적어도 이를 풀어볼 의지는 있었는가?

새 변호사
  • 감언이설 의 가능성을 고려하여, 약속된 내용들을 서면으로 받아내었는가?

  • 중복청구 될 수 있는 법률 비용에 대한 고려가 되었는가?

  • 일부 사건진행이 딜레이 될 수 있는 점은 이해하고 있는가?

  • 내 법적 문제를 대리해 줄 담당 변호사로서의 자질검증은 어떻게 하였는가?

하고 싶은 말은 많다. 하지만, 구차해보일까 노파심에 이 정도로 마무리 해야 할 듯 하다.

평생에 변호사 만날 일이 얼마나 많을까? 적어도 나는, 내 동료들은, 내 직원들은, 아래와 같은 철칙을 하루하루 몸에 새긴다.

  • 우리가 하면 다르다.

  • 초심을 다지며, 중심 잡으며, 진심을 다해 의뢰인을 섬기자.

  • 깊이있는 법률지식으로 주변을 다지는 변호사가 되자.

  • 당신의 변호사, Your lifetime lawyers

부끄럽지 않기위해, 이 글을 남긴다.

그리고, 비단 위의 내용은 개인상해 사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민, 상법, 가정법, 고용법, 형사법을 포함한 모든 법 분야에서 마찬가지이다. 결국, 우리는 법 아래에서 의뢰인의 법적 이익을 위해 섬겨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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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말로는 손고자 라고도 하더라. 일명, 젊은이들의 신조어이며, 문자 그대로 어감이 실려서 가슴에 꼽히는 그런 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고백한다. 나는 똥손이란 것을. 물론, 똥손이냐 아니냐는 어떤 분야에서인지를 가리키는 문맥, context 정말 중요한데, 특별히 경우는 무언가를 만든다거나, 손재주가 필요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똥손이 아닌가 싶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엄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가 보이는 자그마한 재주들이 너무 대단해 보여서 아이의 특별한 재능으로 오해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잦다는 느끼게 되었다. 그럴만한게.... 천재를 낳았을리가 없어보이거든.
하지만, 이런 기대와 오해들이 모여서 아이의 재능, 특기로 몰아가고, 결국에는 뜻하지않은 결과에 함께 좌절하거나 아이의 힘든 인생여정을 초래한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경우들이 있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애초에 속까지 이과계열 공돌이인줄 알았다.

어릴적, 교회친구가 조립식 라디오 공작을 하던게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같은걸 몇개 씩이나 조립했었고, 아카데미에서 나오던 프라모델은 얼마나 쳐들여 사모았던지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덩달아, 아들이 이런 분야에 재주가 있는건 아닐까 싶어서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온갖 정성으로 이를 뒷바라지 하셨을지...

여기에 수학성적은 당대에 월등한 수준을 유지했었기에 그냥 이과로 정해진줄 알았다. (이건 나중에 토막 글로 한번 썰을 풀어보기로 하자. , 수학만큼은 유명하게도 잘했었던 하다. 물론, 당시에. 지금은 수학도 똥손?) 덕분에 부모님도 아마 마찬가지 생각이셨을듯.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변호사. 그것도 호주땅에서 영어를 무기로 논쟁과 논리로 무장하고, 수많은 판례와 글들을 읽어가며 상황에 맞게끔 조합해내야하는 문과 글쟁이가 익숙하고 편안한 나날들을 보내고있다.

덕분에 기계는 손만 대면 고장나고, 깨지고, 부서지고... 어느새 손은 똥손이 되고만 것이다.

제목은 똥손이라 썼지만, 결론은 이렇다.

아무리 자식이 귀하고, 특별해 보인다지만, 마음이나 판단 때문에 잘못된 가이드를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생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예능쪽 관련 재능 덕분에 인생이 그렇게 힘들어지는 경우들을 가까운 주변에서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모두 똥손일 있거든.

둘째 아들도 힘들게 무리해서 QASMT 보냈었다. 그리고,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서, 재빨리 다시 학교를 옮겼다. 적성에 맞게 무리하게 부모 만족을 위해 아이가 힘들어해서는 안되는 법이니까.

웃자고 시작한 글이었는데, 너무 진지해진 감이 없지않지만.

누구나 나는 금손이 아닐까, 자식은 금손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조금만 냉정하게 3자의 입장이 되어보면 실수를 줄일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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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과 문화, 정말 중요하다. 특히나, 살아온 배경과 배워온 환경, 분야가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을 때에는 특히나 그러하다.

2005년, 호주 땅을 밟고서, 1년 즈음이 되었을 때, 젊은 나이에 무언가 전념할 생업이 없어서는 안되겠다는 심정에 구직활동을 시작했고, 전공을 살리는게 가장 안전하다 생각하여 브리즈번 지역의 IT 관련 포지션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다닐 때의 일이다. (쓰고보니 무려 15년 전 이야기인 것이야?)

한국에서의 경력 자체가 따끈따끈한 분야였었고, 해당 전공분야는 적어도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서 반드시 예산이 배정되어야 할 만하였기에 좋은 일자리는 꽤 있는 편이었다.

그리하여, 퀸슬랜드 주정부 산하의 각 부처의 보안팀 주요자리에서의 고급 공무원 자리에서 최종 short listed 지원자 자격으로 인터뷰도 꽤 여러번 보았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곳은 바로 호주 퀸슬랜드의 산재공단이랄 수 있는 WorkCover Queensland 의 고위 직급 보안책임자 자리를 위한 인터뷰였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순 없어서, contractor 형태로 계약직 자리 정도)

사람을 불러놓고, 인터뷰어가 셋이나 들어와서 그렇게 이리치고 저리치더니, 대뜸 시험을 보겠다는 것 아닌가.

헐!

subnet mask 를 활용한 Cisco router 의 access control list 관리부터 시작해서, 여러 네트웍 장비, 보안장비에 대한 시험을 꽤 오랜 시간동안 쳤던것 같다.

인터뷰도 끝나고, 시험도 다 끝냈고 (적어도 문제는 다 풀었다), 기분좋게 헤어질 무렵, 인터뷰어 셋이 모두 입을 맞추어 "See you later!"

난 내가 잘해서, 다음에 꼭 다시 보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그 엄청난 superannuation contribution 에 깜짝 놀라며, 은퇴자금은 문제없겠다며 김칫국을 열심히도 마셨었다.

See you later!

우리말로 굳이 하자면, 나중에 우리 밥이나 한끼해요! 와 같은 말.

헤어질때, 그냥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다시 만날 기약이 아니라.

살아가며 만나는 그 수많은 인연들을 모두 하나같이 다 챙길 수는 없다. 이해관계에 따라, 또는 마음가는 그 인정씀씀이에 따라, 더 눈이 가는 인연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인연들도 있을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적어도 나는 우리 밥이나 한끼해요! 를 습관처럼 뱉으려 하지는 않는다. 꼭 밥 한끼 해야할 사이에서만 밥 한끼 하자고 한다. 그러니, 어떤 형태로든 나와 인연이 닿는 분들 중, 밥 한끼 제안받은 분들이라면, 나중에라도 꼭 연락이 닿아 서로 밥 먹으며, 못다한 이야기들 나누고 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의 삶도 무려 16년이 되어간다. 여전히, 나는 See you later! 를 함부로 내뱉지 않는다.

Thanks. Bye.

다시 볼 기약을 할 수 없다면, 나에게 이 이상은 무리이다.

아내는 이런 내가 굉장히 건조해 보일 수 있고, 싹퉁바가지로 보일 수 있다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내 입으로 뱉은 말은 지키고 싶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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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보면, 맡은 일이 내 성향과 맞지 않거나, 초심과는 달리 어느새 지쳐감에 따라, 열정과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못함으로 인해 침체되는 분위기가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

나 역시 뒤돌아보면, 2012년, 첫 로펌을 그만둘 때, 그러하지 않았던가? 회사의 방침, 의뢰인에 대한 대우 등 이루말못할 고민들이 하늘까지 닿았던듯 하다. 물론, 능력보다 더 많은걸 욕심내다가 주저앉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법무법인으로 전환한지 만 6년. 그 전 개인사무실까지 포함한다면, 만 8년간의 로펌 경영을 해오고 있는듯 하다. 철저한 분업을 통한 공동협업이다보니, 혼자서 모든걸 고민하는 부담은 없었지만, 그 기간 사이에 정말 많은 직원들을 보아왔고, 경험한 듯 하다.

그 중 정말 다시는 만나고 싶지않은 역대급이라 불리울만한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잃어버린 열정과 흥분 탓인지, 아니면 애초에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인지, 새로운 꿈과 희망을 쫓느라 손에 쥐어진 업무를 등한시 한 탓인지, 세상을 피해 사무실이란 공간에서 방어막을 쌓는데 여념이 없었기 때문인지, 한결같이 일 따위는, 의뢰인은, 안중에도 없었다 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은지.

사람은 남겨놓은 흔적들로 기억된다. 일을 맡겨준 의뢰인과의 인연 따위는 내팽개치고, 새롭게 일을 넘겨받을 동료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로 기억되는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앞서 말한 역대급 직원들이 여럿 있다.

다시는 만나고싶지 않다. 그들이 남겨둔 발자취의 악취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요즘같은 세상에 모를 수가 있나. 한결같은 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안쓰럽다. 그 주변인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될까봐.

세상살아가며 남녀간에 이런 상황이었다면, 이들은 소위 '쓰레기' 라는 평가로 도배가 되고도 남지않았을까?

남겨둔 발자취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원리/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생각한다.

작은 일 하나에도 충성을 다하고, 내가 가진 달란트를 쏟아부을 수 있는 마음가짐. 내일 당장 다른 곳에 가게 되더라도, 오늘에 열과 성을 쏟아부었음을 만인이 알 수 있는 그런 모습들.

인사가 만사란다. 정말 좋은 인연들만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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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숭미주의자가 아니다. 뼛속까지 한국인이고, 우리 아이들도 한국인으로서의 자기의식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여러가지를 가르치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한국 여행을 자주 가는건 별로. 같은 값이면 여러 곳 다니면서 추억거리들을 쌓는 재미를 더 좋아하니까. 게다가, 한국에서 다행히도 양가 부모님들이 자주 호주를 방문해주실 수 있어서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자라는 과정 중 영향으로 인해, 밑도 끝도 없는 미국에 대한 찬양과 미제선호 분위기에 '익숙한' 것은 사실이다. 왠지, 미국의 동향, 의견, 발언이면 무언가 그럴싸해보였다.

지금이야, 내가 뿌리내리고 살고있는 이곳 호주가 가장 좋다고 여기지만 말이다.

작년 말, 호주 동부를 휩쓴 산불파동은 사실 내 눈 앞에 펼쳐진 일은 아니었고, 마침 가장 절정을 찍는 시점에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기에 가슴 속 깊이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이토록 많은 이재민을 불러온 산불사태가 인재는 아닐까? 정부는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정도의 생각만 했었지. 만약, 우리집이 활활 불타오르는 상황이었다면 그 절망은 어떠했을까?

2020년 2월부터 슬금슬금 퍼지기 시작하던 우한폐렴. 3월부터는 겉잡을 수 없어지더니, 급기야 전 세계적으로 pandemic 이라 부르며, 국경봉쇄 또는 출입국 제한, retail 업계를 비롯하여 public gathering 의 금지 등의 전무후무한,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넘쳐나는 우울한 뉴스들과 갖혔다라는 느낌으로 인한 많은 이들의 감정적 동요는 소위, '술렁인다' 라는 표현이 무엇인지를 실감케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다. 사람의 지나온 경험으로는 감히 상상키 힘들 정도의 급박하게 돌아가는 실황들 앞에서 우리는 전전긍긍 외에 별달리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기껏해야, 집에서 방바닥 긁으면서 stay at home 을 준수하는 것 정도.

열흘 넘게 미국 전역을 들끓게하는 George Floyd 사망 사건은 과거 Martin Luther King Jr. 시절의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카리스마 가득했던 시위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고들 평가받는듯 하다. 시민들, 국민들의 이런 열망과 쌓였던 분노에 대해 현재 보여지고있는 리더쉽은...

이쯤에서 말은 아끼는게 정석.

미국이 이리 될 줄이야!

미국 변호사 라이센스 아래에 펼칠 준비를 하던, 미국 이민 practice 는 일단 당분간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어두어야겠다.

내가 미국 이민 업무를 추가하려했던 이유는 오로지 시장의 needs 때문이었는데.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언제 내가 보아왔던, 기대하고, 준비하던 그 needs 라는 것이 '미국' 이라는 곳을 대상으로 다시 활활 타오를지 기다려보아야겠다.

대마불사 라 했었는데...

초일류 국가라고 스스로 표명하고 표방하던 미국. 어떻게 이 국난을 극복해가는지 기대가 되고, 그 미래에 건투를 빈다.

protest... 
라틴 어원을 쫓아가서 보자면, assert publicly 를 뜻한단다. make a solemn declaration. 단지, 소요와 혼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결과를 화합 가운데 이루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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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체는 단순하다.

영어를 못하는 호주 변호사, 반면 한국어는 모국어이기에 할 줄은 안다. 어쩌면 운이 좋아, 한국어를 참 조리있게 잘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실, 현재까지 그런 직원을 보지 못했다. 영어를 못하면, 한국말도 말만 할줄 알았지, 처절하게 매너가 없거나, 앞뒤가 다르거나, 논리적으로 받쳐주지 못해서 결국에는 의뢰인의 원성만 사는 직원으로 결론 나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을 고용해야할까?

이민을 와서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서 정착을 해가는데, 모국어 수준에 가깝게 해당 언어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건대, 이곳에 와서도 한국어만 쓰면, 교민 지역사회에서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정말 대단히 많다. 그만큼, 이민이 보편화되고,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기반시설들이 필요에 따라 구축되고, 인터넷을 통한 통신의 용이함 등이 갖추어지다 보니 가능해진 일들이다. 물류, 교역이 쉬워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것이고.

고백하건대, 회사 업무의 과반 비중이 한국인 이민자들 (교민, 유학생, 취업파견인, 이민2세 등) 관련 일인지라, 한국어를 능통하게 쓸 수 있는 변호사가 정말 필요하다. 덕분에, 어쩌면 이곳 지역사회에서는 법대 출신 교민 또는 교민 자녀들이 일자리를 구하는데 있어서 우리 법무법인이 참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었다.

인사청탁에 준하는 문의들이 얼마나 빗발치는지... 

한국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본인의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특징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잊지말자. 이곳은 호주다. 호주에서 호주 법을 펼칠 수 있는 호주 변호사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어' 는 기본 중 기본이다.

주연을 뛰어넘는 조연이 바람직하지 않듯 (오해하지 말기를, 조연도 중요하다. 다만, 주연이어서는 안될 뿐) 이곳에서 변호사가 되고싶다면 영어능력을 한껏 키우기 바란다. accent 를 바꾸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은 나 역시도 뼈저리게 느끼는 부분이고, 평생 숙제임이 분명하기에,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서면 또는 구두로 내 의견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미묘한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고, 논쟁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이 없는 변호사라면, 생각을 다시 해보기를 정말 권한다.

일을 맡기는 의뢰인의 마음에 잠시 들 수는 있겠지만, 이 무대에서 당신은 인정받지 못할 것이고, 그 패배의 쓰라림은 고스란히 의뢰인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대리하는 representation 이라는 일, 그것도 legal representation 이라는 법률 대리인, 변호사에게 이런 가혹함을 이겨낼 능력이 없다면, 시작부터 자질이 없다는걸 시인해야된다.

이런 사람들이 이 업계에 있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다. 실력이 안되면, 노력이라도 하던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던지.

먹고 살기위해 변호사가 된 것이란 말인가? 뒷감당은 의뢰인에게 뒤집어씌우고?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감정적으로 발끈할 수 있는 일부 독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히 밝힌다. 영어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성공적인 이민생활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많은 분야들이 있고, 이민선배들이, 동료들이, 후배들이 이런 길들을 단단하게 밟아가며 훌륭한 선례들을 만들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이민자들이고, 영어 잘하고 못하고는 이들의 인격, 품성, 인간성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다만, '영어' 를 무기로 누군가를 대리하고, 대변해야하는 역할을 맡겠다는 사람이 함량미달임을 알게되고서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정도 책임의식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이 분야에 뛰어들겠다면, 그 결심을 재고하여야 한다. 책보고, 수업듣고, 시험문제 풀 수 있는 수준으로 누군가의 법적권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안일하달 수 밖에.

나는 오늘도 하루를 준비할 때, 더 나은 advocacy 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 때에도 지난 하루를 짚어보며, 반성과 더 나은 발전을 위해 고민한다. 적어도, 그런 변호사의 자세만큼은 일류라 자부한다. 그리고, 지난 십여년을 되돌이켜본다면, 내 영어는 accredited specialist 자격으로 법정에 서서 의뢰인을 대변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수 밖에.

오늘이 가장 최저점.

이 정도 자신감과 자부심이라면, 당장 이력서 보내주기 바란다. 함께 일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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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당신 호는 겸온, 겸손과 온유라 하고싶으시다고. 세상을 살아오면서, 겸손보다 나은 무기가 없고, 다른이들과의 이견을 풀어가는데, 온유만큼 강력한 효과를 불러오고, 화합을 도모하는 도구도 없다는 말씀을 그렇게도 자주 해주셨는데,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그 말씀을 이제야 알 듯 하다.

조직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제아무리 management 관련한 서적을 탐독하고, 그럴싸한 이론을 도입해보겠답시고 챠트를 그리고, OX 를 그어가며, 조직관리를 한다손 치더라도, 결국에 가서, 동료들, 부하들의 지지를 불러오고, 의뢰인의 믿음을 사오는데에는 겸손과 온유만한 것이 없더라.

그렇게,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감에 우쭐했었다. 회사의 성장과 규모,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인정이 마치 내 능력인양 자만을 했었던듯 싶기도 하다.

2018년 샹하이 출장에서 중국을 맛보고, 2019년 광저우 및 우한 출장에서 본격적인 회사의 청사진을 중국을 배경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내 능력이면 그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질줄 알고서.

인구 천만도시 우한에서의 메이져 로펌들과의 업무제휴, 호주 진출을 노리는 중국인 기업집단들의 이어지는 문의와 러브콜. 당장이라도 중국어를 배워놓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질듯 쫓기는 그 긴장감을 즐겼던듯 하다.

2019년 6월에서 7월로 이어지는 보름간의 출장, 그리고 2019년 하반기까지 비밀 프로젝트 하에 그렇게 2020년을 그리는 비장의 프로젝트들이 연일 이어졌었다. 그리고, 2019년 12월에 한달 간의 긴 휴가를 한국으로 다녀오게 된다.

2020년 새해가 열림과 동시에 중국을 끌어안고, 비상하는 일만이 남은 양.

호주로 귀국함과 동시에 들려오는 우한폐렴이라는 심상찮은 소식들은 마치 파장에 맞추어 공명이 점점 더 커지듯 걱정과 근심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아뿔싸.

인간의 힘으로 제어 못하는 것들, 예측하지 못하는 것들, 미처 예상치 못하는 것들은 널리고도 널렸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최고의 미덕이 겸손과 온유였다면, 세상을 대하고, 본인을 다스리는데 최고의 미덕 역시 겸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견고하되, 실력 따위에 대한 자만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의지에 대한 약속 정도여야 할 듯 하다.

자만하지 말아야겠다. 세상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우한폐렴으로 불리던 COVID-19 이 전 세계를 이렇게 휩쓸어가고, 덕분에 우한 프로젝트는 도대체 언제 성사 가능할지 앞일을 알 수 없게 될 줄 누가 알았더란 말인가.

삼국지의 주무대 우한. 양쯔강이 관통하는 그 멋진 도시는 불과 1년 만에 옛 추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겸손하고, 굳은 의지로 묵묵히 최선을 다해야지. 때가 무르익으면 그 열매를 따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이 즈음에서 내가 직원들에게, 그리고 의뢰인들께 이야기했던 한 토막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볼까 한다.

깜깜한 밤, 익숙하지 못한 길을 걸어 목적지로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같이 밤에도 불빛이 흔한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영화나 소설 속 묘사에서 우리는 시골의 그런 풍경들을 상상해볼 수 있죠.

 

지도를 갖고 그 길을 걷는것도 아니기에, 돌부리 하나도 조심해야하죠.
이 길을 어찌 다 갈꼬라며 한숨을 쉬는 것 보다는, 발걸음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해, 힘차게 땅을 딛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간다면, 결국에는 최선이라는 결과는 아닐지라도, 최악이라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준비하고, 헤쳐가야할 이 상황에 해법이 정해져있어서, 꽃길만 밟으며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선택과 노력을 다하는것.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해야할 일입니다.
그 끝에 우리는 최선이었냐, 차선이었냐, 최악이었냐, 차악이었냐를 따져볼 기회는 있겠지만, 그 과정 덕분에 우리는 배운게 있고, 후회가 없고, 미련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다음에 더 나은 도전과 결과를 가져올 든든한 경험을 갖게 되겠죠.

겸손을 담고, 노력하며,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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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수백여국가 모두가 동일한 국가체계를 갖고 있지는 않다. 각 국가의 유구한 역사 가운데, 외세의 영향, 내부에서의 정권 또는 왕조의 분열, 권력의 찬탈 등 여러 상황에 따라, 그 국가 고유의 문화와 찬반 가운데 시스템이라는 이름 아래에 굳어진, 하지만 때에 따라 변화가 동반되는, 그 나라의 정체성을 띄게 된다. 사실이 이럴진대, 어떻게 모든 국가들이 동일한 국가체계를 갖고 있을 수 있나?

대통령 직선제의 대한민국, 선거인단에 의한 미국식 대통령 선출 형태의 연방구조, 영국이나 호주, 캐나다와 같은 입헌군주제 아래에서의 내각책임 국가체계, 적어도 이 정도는 내가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보아오고, 살아오면서 눈여겨보고 있는 국가체계라 할 수 있겠다.

Unprecedented event, 일명 유례가없는 사태라 불린 COVID-19 pandemic 파동은 속수무책으로 각 국가들이 나라를 운영해가는 과정에서 각 국가별 특징들과 장점, 단점들을 낱낱이 드러내는 효과들을 가져온 듯 하다.

내가 살고있는 호주만 하더라도, 초기대응은 빨랐다 할 수 없겠지만, 호주 역사상 가장 긴밀한 연방정부-주정부의 협조체제를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연방-주정부의 향후 국가이익이라는 공동사안에 대한 역사적 표준을 만들었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반면, National Mandatory Code of Conduct 라는 형태로 임차인들 보호 명목 아래에 나온 성급한 정책들 - 임대사업자들은 고스란히 그 피해를 독박써야 한다 - , JobSeeker, JobKeeper 제도의 시행 과정에서의 자잘한 오류들, 국경봉쇄 수준에 달하는 조치 가운데서 waiver 또는 concession 을 심사하는 데 있어서, 원리원칙의 부재와 느린 행정수속, 그리고 국가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 임시비자 소지자들에 대한 무례한 대처는 이 나라에 대한 믿음, 비자시스템에 대한 믿음, 국수 애국주의의 도를 넘어선 선동 수준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와중에 들고나온 JobMaker agenda 는 쐐기를 박고 있다. 사실상, trade 관련 직종의 경우, 발표된 agenda 계획에 따르면, 외국인 유학생들은 비자플랜 자체가 무리랄 수 있다. business 를 살리고, job 을 만들어내고, 훈련된 호주인들이 일자리로 돌아가게끔 한다라는 이상 아래, 미래를 바라보며 돈과 시간을 써가던 유학생들의 꿈과 계획은 어찌될런지.

Job 시리즈는 어디까지 이어질런지

피해가 이 정도로 수습이 된다면, 시스템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확산되지는 않겠지. 득실을 따졌을때, 싫으나 좋으나, Morrison 정권은 산불사태 수습에 늑장을 부리다 잃은 정권에 대한 추락한 신뢰를 COVID-19 사태에 대한 대처를 통해 완전히 회복하였다. 이는 더 빠른 실행에 힘을 불어넣어줄 것이고, 10월 예산발표에 국민들이 충격을 먹지 않는 한, 2년 내에 벌어질 다음 선거에서 압승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물론, 현 시대에 2년 가까운 시간은 엄청나게 긴 세월이긴 하지만)

나는 사실 다가올 호주의 이민정책이 걱정된다.
누구에게 확실성과 믿음을 줄 수 있을지.
애국 보수주의의 파편이 외국인들에게 가장 먼저 튈 것임을 만천하에 공개한 이 나라가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말이 앞서고, 조치가 뒤따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임기응변 대처방법의 민낯을 어떻게 해결해낼 수 있을지.

한편, 미국은 COVID-19 대처, 행정지도부의 어긋난 발표와 비난, 그리고 위기상황에서 담당자들의 교체와 문책,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불협화음, I can't breathe 의 Floyd 사망사건과 이에 대한 유혈폭동 등으로 사실상 초유의 국가불안정 수준으로 달려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불안할 정도이다.

1등이 뒤처질때, 치고나갈 2등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무리의 선두가 분열할 때, 전체 무리가 갈팡질팡 하던 모습들을 흔히 보아왔던 우리들 아닌가? 지금 전 세계가 이런 혼란 속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대통령 1인, 총리 1인을 보며 국가의 존망을 맡겼다기 보다는, 국민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고, 국가로서의 위상을 integrity 가운데 지켜가는 행정의 수반으로서 이들을 내세워, 시스템을 믿어왔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사회혼란은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해결사들의 등장이 시스템에 대한 재신임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2020년 후반전, COVID-19 이후의 경제회생이라는 이름 아래,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강권하고, 애국주의로 현혹하는 국가운영이 제발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엔 '법' 아래에서 집행될 것인데, '법' 을 수호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국민의 대표들이, 국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어주었으면 좋겠다. 호주건, 대한민국이건, 미국이건,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Rule of law,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니까.


Posted by 박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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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열풍을 불러왔던 책이 있다. The Secret.

우주로부터 성공의 기운을 끌어모아, 내 운명을 성공의 방향으로 이끌어가겠다는 비밀을 독자에게 몰래몰래 알려주겠다는 것이 책의 요약. (이런 류의 책은 정독하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사실 정확한 책의 내용은 이와 다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알려진 책이다.)

성공에 대한 강렬한 의지는 또다른 성공의 기운과 긍정의 효과들을 불러오기에, 어쩌면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그러한 열망 가운데, 결국에는 노력과 주변여건이 싱크되는 지점에서 내가 원했던 결과를 '정량 - quantitative' 이 아니라, '정성 - qualitative' 의 형태에서 자위하게 되거나, 믿게되는 (convict) 경우라면, 이런 원리 원칙에 스스로 납득 당하게 되었을 터이니까.

이와 정 반대되는 예를 들어보자.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가정하고, 그에 대한 대비 또는 걱정들이 이어지게 된다면, 어느샌가 이러한 결과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내면에서 어느새 자리잡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 가까운 일들이 터지게 되면, 우리는 돌연, '왜 불길한 예상은 어김없이 적중하는가?' 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리게 될 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불길한 예상이 어김없이 적중했을리가 없다. 준비를 잘해왔고, 그러한 상황분석을 미리 해놓은 것이기에 준비된 상태에서 - 설령 원치않는 결과이기에 그리도 피하고 싶었으나 - 그러한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를 잘 가다듬어서, 이런저런 방향제시와 마음가짐에 대한 대처, 처세를 다루면, 누가 아는가? The Secret 2 라는 책이 또 하나 나오게 될지.

준비하지 말라.
최악은 생각지도 말라.
닥치면 그때 생각하라.

뭐, 이런 처방과 대처, 그리고 처세가 그런 책의 결론이 되려나?

오늘은 기분이 매우 착잡하고, 복잡한, 그런 하루이다.

마음 같아서는 자리를 비우고, 해변을 바라보며 머리를 식히고 싶은데, 현실은 그런 호사를 누릴 수가 없구나.

의뢰인을 위한 변호는 내 몫이지만, 내 복잡한 마음은 누가 변호해주나?

마음의 변호사가 필요하다.

 


Posted by 박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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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바로 옆 도보로 5분 거리에 한식당이 하나 있고, COVID-19 State restriction order 기간이어도 음식점에서 pickup 은 가능하기에 생각보다 점심시간이 덜 서글프다. 따스한 햇살 맞으며 잠시 산보가는 기분이어 썩 괜찮은 느낌까지도 가져다 주니 말야.

점심시간, 나누게 된 이야기는 바로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사건에 스스로를 대입하게 되는 자세였다. 이름하여 감정이입.

이민법 분야에서의 대부분의 의뢰인은 비자신청인 또는 비자가 취소될 위험에 놓인 비자소지자 등일테고, 개인상해 사건에서의 의뢰인은 다른이의 잘못으로 인해 신체상해를 입고, 이로 인해 경제적 손실 등을 입게된 이들이다. 일명, transactional matters 라고 불릴 수 있는 등기업무나 비지니스 매매 사건의 경우에는 조금 다를 수 있겠으나, 이민, 개인상해, 형사사건, 고용법, 가정법 등의 여러 분야에서의 의뢰인들의 사건을 진행하다보면, 단순히 사건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만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를 많이 겪게 된다.

변호사로서 간접경험을 통해 지식과 경험, 정보를 넓혀가고, 다음을 위한 자세가 더욱 견고하게 준비되는 장점이 있다면, 감정이입으로 인해 피폐해지는 상황은 큰 단점 중 하나랄 수 있다.

혼을 담은 변론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가 닿지 않아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던가, 비자가 거절되었다던가, 유죄판결이 났다던가, 보상금이 턱없이 낮다던가.

어떤 법분야인가에 따라, 이러한 감정이입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변호사의 인격, 품성이 그 경향이나 깊이를 좌우하는듯 하다.

이런 면에서 나는 완전 프로 감정이입러.

아, 그래서 힘들다. 사건 하나 끝내고나면, 감정의 우물을 바닥까지 퍼낸 느낌이고, 재충전에 에너지가 더 소모되는 듯 하다. 특히나, 원치않는 결과를 맞닥뜨리게되면, 바닥을 깨고, 지하로 가라앉는 느낌이니 말이다.

선배 변호사로서, 후배 변호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딱히 없다.

메마르지 않은 감정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건 아니니, 축복으로 여기고 더 측은지심으로 의뢰인을 대변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의 원천으로 여겨,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것 아니겠냐고.

감정의 기복으로 사건을 망치기 보다는, 풍부한 감성과 이해를 토대로 변론의 깊이와 색깔을 다양하게 표현해내면 좋지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오늘의 변론서를 마무리해본다. 내 마음이 최종 decision maker 에게 닿을 수 있기를 기대해보면서.


Posted by 박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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