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바로 옆 도보로 5분 거리에 한식당이 하나 있고, COVID-19 State restriction order 기간이어도 음식점에서 pickup 은 가능하기에 생각보다 점심시간이 덜 서글프다. 따스한 햇살 맞으며 잠시 산보가는 기분이어 썩 괜찮은 느낌까지도 가져다 주니 말야.

점심시간, 나누게 된 이야기는 바로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사건에 스스로를 대입하게 되는 자세였다. 이름하여 감정이입.

이민법 분야에서의 대부분의 의뢰인은 비자신청인 또는 비자가 취소될 위험에 놓인 비자소지자 등일테고, 개인상해 사건에서의 의뢰인은 다른이의 잘못으로 인해 신체상해를 입고, 이로 인해 경제적 손실 등을 입게된 이들이다. 일명, transactional matters 라고 불릴 수 있는 등기업무나 비지니스 매매 사건의 경우에는 조금 다를 수 있겠으나, 이민, 개인상해, 형사사건, 고용법, 가정법 등의 여러 분야에서의 의뢰인들의 사건을 진행하다보면, 단순히 사건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만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를 많이 겪게 된다.

변호사로서 간접경험을 통해 지식과 경험, 정보를 넓혀가고, 다음을 위한 자세가 더욱 견고하게 준비되는 장점이 있다면, 감정이입으로 인해 피폐해지는 상황은 큰 단점 중 하나랄 수 있다.

혼을 담은 변론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가 닿지 않아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던가, 비자가 거절되었다던가, 유죄판결이 났다던가, 보상금이 턱없이 낮다던가.

어떤 법분야인가에 따라, 이러한 감정이입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변호사의 인격, 품성이 그 경향이나 깊이를 좌우하는듯 하다.

이런 면에서 나는 완전 프로 감정이입러.

아, 그래서 힘들다. 사건 하나 끝내고나면, 감정의 우물을 바닥까지 퍼낸 느낌이고, 재충전에 에너지가 더 소모되는 듯 하다. 특히나, 원치않는 결과를 맞닥뜨리게되면, 바닥을 깨고, 지하로 가라앉는 느낌이니 말이다.

선배 변호사로서, 후배 변호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딱히 없다.

메마르지 않은 감정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건 아니니, 축복으로 여기고 더 측은지심으로 의뢰인을 대변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의 원천으로 여겨,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것 아니겠냐고.

감정의 기복으로 사건을 망치기 보다는, 풍부한 감성과 이해를 토대로 변론의 깊이와 색깔을 다양하게 표현해내면 좋지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오늘의 변론서를 마무리해본다. 내 마음이 최종 decision maker 에게 닿을 수 있기를 기대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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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일찍 한 터라,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첫 아이를 보게 되었다. 대략 둘째가 태어났을때를 기억해보면 동년배들이 첫째를 계획하거나 좀 빠른 친구들은 그제서야 첫째 아이를 본 시기가 아닌가 싶다.

우리 첫째와 둘째는 만 3년 이상 차이가 나니, 빨라도 좀 많이 빠른 편이었던듯.

첫째가 태어났을 때, 나와 아내는 만 24세였다.

내리 아들만 둘을 본 상태에서, 더 이상의 아이는 포기해야겠다 마음 먹을 시기였던 2008년 12월에 우리가 맞은 축복, 막내딸은 그야말로 존재만으로도 기쁨이었다. 물론, 아들 둘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무래도 막내딸 효과는 물면 살짝 더 민감하게 아픈 손가락 정도라는 차이가 살짝 있다.

이 막내딸이 만 11세가 지나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다보니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본인의 생각과 주관을 밝히는데 있어서 참 저돌적이다.

활동량이 많고, 에너지가 넘쳐, 평소에도 스포츠 소녀로 온 학교를 대표하고, 지역단위로 구성된 girls' basket ball 리그에서 동네수준이긴 하나, 시즌 전승 우승을 이끌고, 학교에서도 스포츠 캡틴을 도맡는 등 잠시라도 가만 앉아있을 수 없는 아이인데, 2020년... 마침... 코로나바이러스가 Stay at home restriction 을 불러오고, 학교 수업도 전면 온라인으로 변경되는 믿지못할 사태를 불러왔다.

이 반강제 가택연금 상황은 정신건강에 정말 안좋은 영향을 불러옴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다. 온 가족들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사소한 일들에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등, 뒤돌아서면 후회할 일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딸 스스로도 이를 알았는지, 애완견을 사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하는데, 동물 곁에는 한시라도 있기 싫어하는 아빠 덕에 서로 마음만 아파하고 있다. 애완견이 있을 때의 장점과 단점을 낱낱이 글로 적어올린 부모님 전상서라는 지상 최고의 전법을 구사해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불러온 최대 복병이 애완견 문제라니! 이 일을 어쩐다?

잠시 지나가는 바램이어서, 학교생활과 친구들과의 시간들로 해결되면 다행이겠지만, 풀리지않는 앙금으로 남게된다면, 그 원망을 평생토록 어찌 떠안아야 할지 막막하다. 사춘기에 가슴 속에 새겨지는 영원한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겁이 덜컥 날 지경이니.

우리집 권력의 끝판왕, 따님.

이미 내 마음은 절반 이상 넘어가버렸다. 사실 나는 동물이 너무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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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출근길 vlog 에서 짧게 한번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나는 정말 우연찮게 이민법무사 (registered migration agent) 자격시험 (MAPKEE - Migration Agent Professional Knowledge Entrance Examination) 을 통해 2006년에 '법' 이라는 분야에 발을 처음 걸치게 되었다. 그마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법' 을 옆에서 구경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솔직히 말해, 이민법무사는 '법' 을 구경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아무리 graduate diploma 과정을 거친다 하더라도), 실제 law practice 를 하기위한 훈련, 접근방법, 법을 읽어서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 단언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법대 LLB 과정이나 JD 과정에서 각각 33과목, 25과목을 이수하는데 비해, 8과목 이하, 그것도 이민법에 국한된 수업을 듣는 산술적 비교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역으로 나에게 있어서, 이민법무사가 된 우연찮은 계기는 결국에는 변호사로 이끌어 준 중대한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과출신 공돌이 전공자였던 나에게, rule of law, 법앞에 모두 평등함이 펼쳐지고, 과거 판례와의 유사성 또는 구분되는 점을 근거로, 각종 증거들과 cross examination 을 통해, 상대방의 증거를 깨부수는 과정은 한편으로는 신세계이기도 하였으나, 너무나 성격에 맞아드는 양면성을 지녔었다.

application form 으로 정교하게 정리되어있는 십여페이지의 종이쪼가리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를 요구하는 법규정과 행정조례, 행정령, 장관령 등이 촘촘하게 이를 맞추고 있다.

if 와 else, 그리고 각종 함수를 불러들이고, 라이브러리를 잘 써서, 효율을 높여가는 코딩과정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오히려, 형용사, 부사, 멋진 동사들로 thesaurus 를 옆에두고, 조금 더 멋진 문장과 변론서를 써가는 과정은 멋진 코드를 써내려간뒤, 컴파일 하며, 에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훨씬 더 박진감 넘쳤다.

많은 호주 동기 법대생들은 변호사의 꽃은 형사법이라며, DPP 검사 또는 형사변호사 (solicitor 로도, barrister 로도) 로 진출을 꿈꾸고 있었는데, 시작과 그 배경이 이민법무사 였기 때문일까?

나에게는 행정법 (정부에게 법의 형태로 주어진 권한이 오남용 되었을 경우에 정부를 상대로 한 불복소송), 각종 라이센스 (licence, permit - 정해진 조건에 맞느냐 안 맞느냐, 형평성과 공평함을 토대로 하되, 정부의 심사과정에서의 재량권 활용이라는 부분을 라인을 타듯 건드려가는 법무분야), 이민법 (이건 감히 평가하건대, 정말 종합예술이다. permit 신청, 조사권 발동에 대한 변론, cancellation 에 대한 변론, merits review 재심, 불복 행정소송, 장관탄원, 뭐 하나 빠지는게 없다.) 이들은 심장을 뛰게하고, 두근거리게하는 삶의 활력이다.

물론, 여기에, plaintiff (원고) 의 소송에 입각한 무대뽀 지르기 정신을 보여준 개인상해 (personal injury) 법무업무를 겪게되고, 이 둘을 동시에 합하고 나니, 사실 law practice 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를 한 순간도 잊은적이 없다.

매일같이 갱신된 행정령은 없는지, 내 분야에 관계된 중요 판례는 없는지, 가이드라인이 법과 충돌되는 부분은 없는지, 실제 몰려오는 사건들은 어떻게 정리될 수 있는지.

성격 나온다. 끝없이 파들어가는 탐구정신.

그렇게, 90년대에 네트웍을 헤치고 다니며, 온갖 unix 시스템들을 들쑤시고 다녔던것 아닌가. 구멍은 없는지, reverse engineering 으로 라우터 뒤에 숨은 네트웍을 역으로 그려가고, 외부에 공개된 서비스들의 취약점을 뚫어가던 당시의 그 희열. 그 이상을 변호사로서 지금도 매일 하루같이 느끼고 있다.

게다가, 간접경험으로 매일같이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

변호사, 세상 최고의 직업이다. 나에게 있어 천직인 것이고.

vo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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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쓰고보니, 이민법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닌듯 하지만, 최근 업무를 맡아서 진행 중인 사건관련해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많은 기술인력들이 RSMS Subclass 187 비자의 direct entry 를 애용했었다. 지방지역에서의 취업을 배경으로, 고용주의 기술인력에 대한 필요를 인정하여, 이를 메워주는 해외 기술인력들에게 소위 영주권을 허락해주되, 해당 고용관계를 적어도 2년 동안은 이어가라는 배경을 갖고서.

이 과정에서 "the position cannot be filled by an Australian citizen or an Australian permanent resident who is living in the same local area" 라는 규정이 있다. 즉, 해당 지방지역에 거주 중인 호주 시민 또는 영주권자로 채워질 수 있는 포지션이라면, 영주권 승인의 기본 요건으로 인정 안해주겠다는 이야기.

문제는 "cannot be filled" 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이다.

광고를 통해 지원자들을 걸러냈고, 그 중 가장 적합한 인력이 해외 기술인력이라고 주장을 하여도, 실제 심사관이 색안경을 끼고서, 광고의 문구가 호주 시민/영주권자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시키는 효과가 있으므로, 그런 문구가 없었더라면 호주 시민/영주권자로 자리를 채울 수 있었을지 모른다 라는 '가능성' 을 들이대며, 위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라는 주장을 해오고 있다.

가능성의 부정을 증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있을까? 1% 의 가능성이라도 있는것 아니냐는 논리를 깨부수려면 도대체 무슨 수를 써야하나? 물리법칙이나 수리법칙도 아니고.

이를 줄이기위해서, 법이란 명시적으로 요건, 조건들을 명확하게 나열하는 것이 좋은 drafting 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변수들을 기입할 수 없기 때문에, catch-all 용도로 other relevant consideration 이라는 유효한 수단이 있음을 누구나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고.

관련 판례에서도 아래와 같이 해설한다.

'significant level' 상당수준으로 실제 지원자들을 사전에 걸러버리는 효과가 있을 경우에는 심사관이 위 규정에 미달한다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인정한다.

흥미로운 점은 187 RSMS 비자에서의 저런 규정이 187 비자를 대체하는 494 비자로 변경되면서, 'cannot be filled' 규정 자체는 없어지고, 이민법 140GBA 아래에서의 Labour Market Testing 이라는 구체적인 postive listing steps 을 만족시키도록 규정 자체가 반대로 drafting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서야 비로소, 제대로된 drafting 을 구현했다는 점은 인정할 만 하다.

그렇다면, 구 법의 적용이라는 이유 만으로, 내 의뢰인은 'cannot be filled' 라는 사실상 심사관의 재량에 따라 무한대에 가까운 요건에 어이없이 무너져야 한다는 말인가?

같은 포지션이어도, 얼마나 시급하게, 그 회사 사정에 맞는 포지션 해당자를 뽑아야 하는지에 따라, 회사 사정은 다를 수 있다. 이런 사정을 무시한 채, 호주 시민/영주권자로 채워질 수 없었음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그 회사의 그 포지션으로는 RSMS 영주권을 줄 수 없다라고 행정결정을 내린다면, 정말 말 문이 막힌다 말고는 표현을 못하겠다.

공석인 채, 10년을 놔두면 어느 누구라도 호주 시민, 영주권자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거나, 그 회사는 없어져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만족시켜야 할 요건들을 명문화하지 않은 채, 가능성을 부정함을 증명하라니.

"cannot be filled" 처럼 가능성이 없음을 증명하라는 황당한 문구가 법령 내에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판단은 행정 심사관의 재량에 달려있다. 무소불위의 재량권이며, 법 아래에 가능하다 라는 웃음을 띄고 있다고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위헌임을 밝히지 않는 이상, 현존하는 법 문구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일반 시민들은 얼마나 망연자실할꼬.

이는 비단 이민법의 문제만이 아니고, '법' 을 통해 권한을 부여받은 행정부 전체에 관계된 문제이기도 하다. 특별히, 이민법이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다보니 두드러지게 돋보일 뿐인 것이고.

금주 월요일부터 마음이 좋지않다. 어떻게 이 심사관을 달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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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at home! - 이건 너와 내가 모두 사는 길

세상이 어찌 돌아가던, 사실 분쟁은 있게 마련이고, 거래는 일어나야하고, 정부로부터 허가는 받아야하고, 법원에서 내 정의를 찾기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일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COVID-19 이 아니라, 전쟁이 났더라도, 형태와 방법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있던 일들이 없어지지는 않을거다. 물론, 계약서 내에 대놓고, 이런 상황에서는 보험의 보장범위를 넘어선다면서 contract out 을 해놓는 경우들은 있지만. 대부분의 먹고, 마시고, 쓰고, 벌고, 어제, 오늘,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주변 상황이 어려워지는 것 자체가 내 일을 덜어주지는 않는다.

덕분에, essential work 로 규정되어, 재택근무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면, 오늘도 나는 아침 7시 30분이면 커피 한잔 손에 쥐고, 회사 문을 따고 출근을 하게 된다. 어김없이. 문 따고 들어가서, 문 단속하고 퇴근하는 생활. 사장이니까.

황금같은 날씨, 연휴가 눈앞에 펼쳐져도, 너와 내가 모두 살기위해서는 사실 social distancing, stay at home 무엇이 되었든 따르는게 정답이다. 덕분에, 멀쩡하던 사람들도 벽보고 대화해야할 정도로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고, 안봐도 될 모습들 서로 보여가며 싸우는 일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오늘 호주 정부는 PM 의 발표를 통해, 앞으로 적어도 4주 동안은 현행 essential services 이외의 서비스들은 shut down 하고, 외출을 자제하는 등의 규제를 이어가겠다고 발표를 하였다.

https://www.brisbanetimes.com.au/politics/federal/australians-want-government-to-stay-the-course-on-covid-19-measures-20200416-p54kfx.html

 

Australians want government to stay the course on COVID-19 measures

Seventy-six per cent of those surveyed now believe the government response is appropriate, up from 66 per cent last week and 56 per cent the week before.

www.brisbanetimes.com.au

한국에서도 확산에 대해, 적극적인 tracing 과 testing 등으로 대처를 잘했다며, 세계적인 극찬을 받고있다지만, 사실 내 개인소견으로는 이곳 호주 역시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의 대처와 강경대책으로 연방제임에도 불구하고, 각 주정부들과의 협조 아래에 상당한 효과를 보이며, 어쩌면 eradication '박멸' 이라는 단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끔 하는 듯 하다.

사실, vaccine 없이 박멸이야 가능하겠냐.

이런 와중에도, personal exercise 를 2인까지는 해도 된다는 허가가 있기에, 따님의 이어지는 애걸복걸에 결국 자전거숍에 가게 되었는데...

잔칫집인줄 알았다. 매장 직원들 마저도 크리스마스 홀리데이 시즌보다 더 바쁘다고 할 정도이니.

사람들의 보상심리는 실로 대단하다. 금지 가운데 풀어둔 것들만큼은 정말 끝까지 챙기려한다. personal exercise 를 자전거 운동으로 보상받으려는 그 대단한 의지들.

덕분에 집에 자전거가 졸지에 2대가 생겼다. 이거, 내년 이맘때는 먼지더미에 쌓이는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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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전 세계의 비상시국 선언, 그리고 이에 대한 각국 행정부의 비상 행정령, 퍼붓는 긴급 자금, 각국 정상, 행정부 수뇌들의 엄중한 경고와 이어지는 메시지들.

COVID-19 의 발원과 그 근거, 치료, 억제, 박멸 등의 시급한 현안들을 너머 그 뒤에 깔려있는 배경들에 눈을 돌리자면, 이들 각 행정부들이 지난 수개월, 수년 동안 제대로 치세를 누리게끔 행정부를 이끌어왔는지에 대한 조금씩 쌓여왔던 평가와 느낌들은 이미 모두 이 2-3개월 새 사라져버렸다.

비상사태이니, 앞장 선 이들을 묵묵히 따라가는 대중들은 무지하다기보다는 현재를 이겨내기위해 하나 되어있을 뿐이다. 하지만, 표심으로 대결해야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따라, 결국 이 시련을 딛고 일어나, 다시 누군가를 뽑아야 할 때가 될 터인데, 반 강제로 일선에서 물러난듯 보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보일까 두려워, 입을 닫고 있어야했던 야당 의원들은 그제서야 뒤늦게 깨닫겠지.

대중의 눈에서 멀어져버린 스스로를.

2022년 상반기, 다시 돌아온다. 연방선거

이렇게, 어지간해선, 각국에서 현 정권의 수명이 반 강제로 연장되는 사태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3만명 이상 몰살당하듯 처참한 숫자들을 보이는 일부 국가는 행정수반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우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발붙이고 살고있는 이 나라의 현 정권은 날카로운 국민의 심판대에 올라서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가 2년 뒤에 오지 않을 듯 하다. 듣고싶은 말들만 펼쳐내며, 미봉책으로 연명되고 있어서야 내일,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Kevin Rudd 시절의 Big Australia 를 잠시 잠깐이라도 외쳐볼 수 있었던 그런 깡다구를 원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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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artment of Immigration and Border Protection 이라는 이름으로 국경보호, 수비까지의 업무를 껴안으며, Tony Abbott 총리시절, 이민성 (편의상 이민성이라 부름) 은 그 몸집을 키웠다. 기존의 DIAC (Department of Immigration and Citizenship) 시절에 비하면, 몸집이 커진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Peter Dutton 이민성 장관 시절에, Malcolm Turnbull 총리가 개각을 단행하면서, 분위기 쇄신이라는 정도로는 말이 안될 정도로, 내무부 (Department of Home Affairs) 라는 슈퍼 부서를 만들면서, 기존에는 cabinet 장관급이던 이민성을 내무부 휘하로 내려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며, 1950년대 이래로 호주 정부 내각의 주요자리를 언제나 차지하던 이민성이 David Coleman 이민성 장관 시절부터는 그냥 사실 내부무의 꼬봉 정도로 주저앉아버렸다.

그 정치적 배경 등에 대해서는 내가 코멘트 할 바는 아니고, 이 업계에서 일을 오랫동안 해오던 입장에서는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일까 란 의구심이 밑도 끝도 없이 계속해서 뭉게뭉게 올라왔으나, 일개 시민이야 투표에서 실력행사 하는 것 말고는 없으니, 건설적 비판 말고는 답이 없었다.

본의는 아니었겠으나, 2019년 11월, 정말 긴박하게 신규 이민정책이 집행되고, 이 나라의 이민제도의 나아갈 방향과 정책의 일관성 등에 대해서 지조있게 밝혀줘야할 시점에, David Coleman 이민성 장관은 개인적 이유를 내세우고, 한순간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 이민성 장관이 대체된 것도 아니고, acting Minister Alan Tudge 장관대행이 겸직을 한단다.

2020년 3월 둘째주, 우리의 슈퍼 부서의 대장되시는 Peter Dutton 내무부 장관께서 친히 COVID-19 증세를 보인다면서,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그 이후로 우리는 수많은 이민관련 뉴스들을 장관대행이나 또는 senior executives 들의 서명이 적힌 legislative instruments (행정령) 의 형태로 보아오고 있다.

그리고, 한켠에서는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을 필두로 임시비자자들의 호주 사회에 대한 기여를 무시하지말고,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의 대안도, 보호하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목소리를 높히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쉽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되면 된다. 안되면 안된다. 를 명쾌하게 책임지며, 실력행사를 해줄 리더쉽이 필요한 이때. 우연찮게도 대장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리더쉽은 어디에?

속된 말로, 아몰랑. 수준 아닌가?

원색적 비난을 목적으로 올리는 글도 아니고, 유언비어에 입각한 비방 글은 더더욱 아니니, 정치적 의견에 대한 freedom of speech 정도로 이해하자. 난 이 나라의 responsible government, representative government 를 너무 사랑하고, 존중한다. 그러기에, 국민의 한표한표로 뽑힌 MP, Senator 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진정한 리더쉽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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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후회하는가?

 

무엇인가를 후회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행위에서 원했던 결과를 못 얻어내었다라기 보다는, 그것 대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대이익을 놓쳐버렸음에 대한 아쉬움 등으로 현재의 행위에 시간을 쏟고, 자원을 낭비하였다는 주관적 느낌이 강하게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어렵게 이야기했지만, 다른 더 좋은게 있었음이 분명한데, 괜히 이거 했다 라는 느낌?

블로그 검색 referral 에 '호주이민 후회' 가 있길래, 도대체 어떤 사연인지 궁금해졌다.

호주에 있으면서, 호주이민 후회하는 사람이었다면 동병상련이랍시고, 같이 후회하는 다른 사람을 굳이 찾아볼 이유는 없을듯 하고, 그렇다면, 호주이민을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라도 모를 호주이민 후회선배의 경험담을 찾아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다시 한번 인생을 살더라도, 이민은 분명히 시도해볼듯하고, 그게 호주일지, 미국일지, 캐나다일지, 뉴질랜드일지, 일본일지, 싱가폴일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이 중 하나는 분명할 듯 한데... 사실, 인생을 다시 한번 사는건 허황된 망상이니, 그냥 개인적인 이민대상 선호국이 저 정도라고 정리하는게 맞겠다.

그럼, 나는 이민을 잘 왔는가?

바야흐로, 2003년. 생각보다 경영하던 벤쳐기업이 뜻대로 잘 굴러가지 않던 차에, 뜻하지않게 호주이민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벤쳐기업도 정리를 잘 할 수 있게 되는 일거양득. 덕분에 2004년에 아무런 뒷끝없이 호주 땅을 밟을 수 있었는데, 계획한대로 모든 일들이 순조로웠던것은 아닌듯 하다.

그런데, 솔직히, 뜻대로 계획한 일들이 모두 술술 풀렸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나?

한국에 있었으면, 나도 2004년에는 첫눈이나 아니면 NCSoft, 네이버 같은 덩치 큰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고급 관리직으로 올라가고 있었겠지. 그리고, 일욕심 있는 편이고, 얻어낸 성과를 제대로 활용도 할 줄 아는 사회성은 있기에, 아마 신나게 치고 올라갈 수는 있었을 듯 하다.

와중에, 출신 고등학교, 대학교 선후배들이 소위 마켓리더, 오피니언리더 급으로 인정받으며, 사회 곳곳에 포진되고 있는 터이니, 상부상조가 왜 어려웠겠나?

그런데, 어디 이게 인생의 전부인걸까?

그렇게 보자면, 2000년 회사 창업 직후, 하반기에 LG EDS 시절 (EDS 의 지분을 인수하기 직전 즈음) 에 있었던, 회사 흡수 건이라던지, 당시 인터넷 보안업계의 합종연횡 시기에 몸값을 제대로 챙기는 일들도 가능했을테고, 손에 쥐는 현찰은 더 넉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주에서 아들 둘에, 딸 하나, 그것도 막내딸. 다섯 식구 옹기종기,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집에 갖혀있는 시간이 더 많긴하지만,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한국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야기하면서 하하호호 웃는 이 시간들이 더 소중하다 생각한다.

어차피, 본전 생각날 때, 후회라는걸 하는거 아닌가?

그런데, 그 본전이란게 보장된게 아니라니까. 어차피 현재 이 순간은 지나고 나면 없는거지. 본전으로 따질 수 없다.

그냥 현재 주어진 present. 그게 현재. 그냥 주어진 선물이니까, 최선을 다해 지금에 충실하면 된다.

호주 이민? 남들은 못와서 난리인 사람들도 있는데, 이미 이 곳에 자리잡고, 열심히 잘 살고 있지않은가?

그리고, 꿈꾸던 것과 조금 다른 일상인가? 그렇게 본전 생각할 거라면, 한국에 있든, 어디 다른 나라에 있든, 결국 늘 어제만 생각하며, 본전생각하며 따질 수 밖에 없는 인생이다.

주어진 이 순간을 헤치고 나가자.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도 이곳에 있고, 경쟁에서 치고 나아가 두각을 나타내는것도 이곳이 더 쉬울 수 있다.

 

 


Posted by 박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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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없이 무슨 낙으로?

어릴적 아버지께서 출근 전, 어머니가 태워주시는 달달한 인스턴트 커피 한잔 끝에 남은 한모금을 마셔보겠다고 그리도 낼름낼름 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학교 시절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소리에 인스턴트 커피를 우유에 태운뒤, 신나게 흔들어서 달달한 맛으로 꿀꺽 마셔대던 일이며, 대학에 가서 자판기 커피와 커피숍 분위기에 취해, 삐삐치고 전화를 기다리며 마시던 그 시절의 비엔나 커피들은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실, 처음 라떼라는 커피를 마셔본게, 2000년 샌프란시스코 여행에서 호텔 1층 스타벅스에서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자판기 밀크커피 맛을 흉내내려 설탕을 듬뿍 담아서 마신 정도?

오히려, 커피빈에서 마시던 챠이라떼가 나에겐 더 맞았을거라 고백할 정도로, 사실 하루에 너댓잔씩 마셔댄 커피는 그냥 카페인 흡수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호주 이민을 통해 만난 이곳에서의 라떼, 플랫화이트는 과연 천하의 스타벅스의 침공을 거뜬히 물리치고도 남을 만하였고, 그 고소하면서도 진하게 몰아치는 커피의 일품 맛에 감탄을 금할래야 금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으로 오늘도 나를 설래게 해주고 있다.

아마도, 이민 초창기에 Zarraffa's Coffee 본점이 집 근처에 있었기에, 아침부터 로스팅되는 커피 볶는 고소한 향내에 취해, 아내와 출근부에 도장찍듯 다닌 덕분에 제대로 호주식 커피 라이프를 우연히 시작하게 된 덕분일 수도 있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아침을 시작하며, 함께 대화를 이어가며, 많은 부분들을 나눌 수 있기도하고, 당연히, 카페인 녀석은 시키지 않아도 본연의 성실함 덕분에 정신을 어지간히도 꾸준히 자극해준다. 하루를 제대로 시작할 때라고.

에스프레소 진액에 무엇을 어떻게 추가하느냐에 따라, 기호에 맞게끔 많은 커피 variation 이 나오지만, 나는 주로 아침에는 strong flat white (샷 추가) 로 시작하고, 저녁에 커피가 마시고플 때는 long black (에스프레소 원액에 뜨거운 물 섞은 녀석 - 한국식으로는 아메리카노) 을 즐기는데, 입맛이란 것이 커피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주 가는 커피가게의 원두, 우유의 조합이 아닐 경우에는 어색함을 견디기 어렵다.

오늘 같은 피곤한 오후, 식곤증이 잠시 몰려오던 때에, 동료 변호사가 작은 플랫 화이트 하나를 가져다주었는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커피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남은 하루가 또 기다린다. 영혼의 묘약으로 잘근잘근 지배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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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 드라마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어있다는 김은숙 작가의 2012년 SBS 방송 작품으로 "신사의 품격" 이 있다. 어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관련 블로그 포스팅을 정말 오랫동안 뜸들인 다음 블로그 글로 올렸는데, 이틀째 연달아 드라마 글이라니.

사실, 이 글은 드라마 글이 아니다.

위 드라마에서야 어린 시절부터 친하던 네 친구들이 각자 자기 길로 나아가면서, 소위, 멋쟁이 아저씨들로 커가는 모습들, 그리고 그 주변에서 함께 빛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랄 수 있지. 게다가, 드라마에 걸맞게 좀 도드라진 캐릭터들을 잘 배치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인생이 금숟가락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시작부터 반짝반짝 빛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자조섞인 목소리로 흙수저랍시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꿈많던 소년, 청년 시절을 보내오다가, 어느새 40대 중반에 이르렀는데, 돌이켜보면 참 즐겁고 박진감 넘치는 인생을 보내오고 있다고 자평하게 된다. 물론, 앞날이 더 중요하고, 최선을 다해서 펼쳐가야겠지만.

COVID-19 이 만들어준 본의 아니게 여유있는 시간? (이렇게 쓰고있지만, 실제 쌓인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덕분에 이 위기 뒤에 펼쳐질 시간들을 어떻게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와 내 아이들이 이런 황당한 시기를 헤쳐가며 어떻게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까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Pinterest 에서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추천해준 시리즈로, gentleman's rules 라는게 있다. 시작하며 언급한 '신사의 품격' 이란 드라마의 영어제목이 'A gentleman's dignity' 라고 되어있던데... 맞다. gentleman 이 같아서 그냥 붙여서 구겨넣기로 시작한 게 이 포스팅이다.

gentleman's rules 라는 키워드로 찾아보면, 마음에 와닿는 글귀들이 법칙이라는 형태로 잘 정리되어있다. 그 중 참 많이 와닿아서, 어제 내가 유튜브 라이브 도중에 목에 핏대 올려가며 한 십여분간 이야기한 내용이 있다.

다른 누구를 평가하기 보다는 내 스스로를 발전시키라는 이야기인데, 라이브 참가자 중 한 분이 오히려 잘못 해석하더라. "니나 잘하세요" 라고.

그 반대다. "나부터 잘하자". 주변이 힘들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남탓을 하는걸 볼 수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순간에도 발전해가고, 기회를 찾고, 앞으로 전진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런 자세를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해서,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당당할 수 있는 내 아이들.


Posted by 박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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