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20.06.24 똥손 by 박창민
  2. 2020.06.18 See you later! by 박창민
  3. 2020.06.11 일 따위는, 의뢰인은, 안중에도 없어? by 박창민
  4. 2020.06.09 미국이 이리 될 줄이야 by 박창민
  5. 2020.06.04 영어를 못하는 호주 변호사를 직원으로 고용해야하나? 호주 변호사를 꿈꾸는 꿈나무들에게 by 박창민
  6. 2020.06.02 자만하지 말자. 한 치 앞도 알 수 없으니 by 박창민

다른말로는 손고자 라고도 하더라. 일명, 젊은이들의 신조어이며, 문자 그대로 어감이 실려서 가슴에 꼽히는 그런 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고백한다. 나는 똥손이란 것을. 물론, 똥손이냐 아니냐는 어떤 분야에서인지를 가리키는 문맥, context 정말 중요한데, 특별히 경우는 무언가를 만든다거나, 손재주가 필요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똥손이 아닌가 싶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엄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가 보이는 자그마한 재주들이 너무 대단해 보여서 아이의 특별한 재능으로 오해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잦다는 느끼게 되었다. 그럴만한게.... 천재를 낳았을리가 없어보이거든.
하지만, 이런 기대와 오해들이 모여서 아이의 재능, 특기로 몰아가고, 결국에는 뜻하지않은 결과에 함께 좌절하거나 아이의 힘든 인생여정을 초래한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경우들이 있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애초에 속까지 이과계열 공돌이인줄 알았다.

어릴적, 교회친구가 조립식 라디오 공작을 하던게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같은걸 몇개 씩이나 조립했었고, 아카데미에서 나오던 프라모델은 얼마나 쳐들여 사모았던지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덩달아, 아들이 이런 분야에 재주가 있는건 아닐까 싶어서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온갖 정성으로 이를 뒷바라지 하셨을지...

여기에 수학성적은 당대에 월등한 수준을 유지했었기에 그냥 이과로 정해진줄 알았다. (이건 나중에 토막 글로 한번 썰을 풀어보기로 하자. , 수학만큼은 유명하게도 잘했었던 하다. 물론, 당시에. 지금은 수학도 똥손?) 덕분에 부모님도 아마 마찬가지 생각이셨을듯.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변호사. 그것도 호주땅에서 영어를 무기로 논쟁과 논리로 무장하고, 수많은 판례와 글들을 읽어가며 상황에 맞게끔 조합해내야하는 문과 글쟁이가 익숙하고 편안한 나날들을 보내고있다.

덕분에 기계는 손만 대면 고장나고, 깨지고, 부서지고... 어느새 손은 똥손이 되고만 것이다.

제목은 똥손이라 썼지만, 결론은 이렇다.

아무리 자식이 귀하고, 특별해 보인다지만, 마음이나 판단 때문에 잘못된 가이드를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생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예능쪽 관련 재능 덕분에 인생이 그렇게 힘들어지는 경우들을 가까운 주변에서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모두 똥손일 있거든.

둘째 아들도 힘들게 무리해서 QASMT 보냈었다. 그리고,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서, 재빨리 다시 학교를 옮겼다. 적성에 맞게 무리하게 부모 만족을 위해 아이가 힘들어해서는 안되는 법이니까.

웃자고 시작한 글이었는데, 너무 진지해진 감이 없지않지만.

누구나 나는 금손이 아닐까, 자식은 금손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조금만 냉정하게 3자의 입장이 되어보면 실수를 줄일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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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과 문화, 정말 중요하다. 특히나, 살아온 배경과 배워온 환경, 분야가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을 때에는 특히나 그러하다.

2005년, 호주 땅을 밟고서, 1년 즈음이 되었을 때, 젊은 나이에 무언가 전념할 생업이 없어서는 안되겠다는 심정에 구직활동을 시작했고, 전공을 살리는게 가장 안전하다 생각하여 브리즈번 지역의 IT 관련 포지션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다닐 때의 일이다. (쓰고보니 무려 15년 전 이야기인 것이야?)

한국에서의 경력 자체가 따끈따끈한 분야였었고, 해당 전공분야는 적어도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서 반드시 예산이 배정되어야 할 만하였기에 좋은 일자리는 꽤 있는 편이었다.

그리하여, 퀸슬랜드 주정부 산하의 각 부처의 보안팀 주요자리에서의 고급 공무원 자리에서 최종 short listed 지원자 자격으로 인터뷰도 꽤 여러번 보았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곳은 바로 호주 퀸슬랜드의 산재공단이랄 수 있는 WorkCover Queensland 의 고위 직급 보안책임자 자리를 위한 인터뷰였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순 없어서, contractor 형태로 계약직 자리 정도)

사람을 불러놓고, 인터뷰어가 셋이나 들어와서 그렇게 이리치고 저리치더니, 대뜸 시험을 보겠다는 것 아닌가.

헐!

subnet mask 를 활용한 Cisco router 의 access control list 관리부터 시작해서, 여러 네트웍 장비, 보안장비에 대한 시험을 꽤 오랜 시간동안 쳤던것 같다.

인터뷰도 끝나고, 시험도 다 끝냈고 (적어도 문제는 다 풀었다), 기분좋게 헤어질 무렵, 인터뷰어 셋이 모두 입을 맞추어 "See you later!"

난 내가 잘해서, 다음에 꼭 다시 보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그 엄청난 superannuation contribution 에 깜짝 놀라며, 은퇴자금은 문제없겠다며 김칫국을 열심히도 마셨었다.

See you later!

우리말로 굳이 하자면, 나중에 우리 밥이나 한끼해요! 와 같은 말.

헤어질때, 그냥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다시 만날 기약이 아니라.

살아가며 만나는 그 수많은 인연들을 모두 하나같이 다 챙길 수는 없다. 이해관계에 따라, 또는 마음가는 그 인정씀씀이에 따라, 더 눈이 가는 인연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인연들도 있을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적어도 나는 우리 밥이나 한끼해요! 를 습관처럼 뱉으려 하지는 않는다. 꼭 밥 한끼 해야할 사이에서만 밥 한끼 하자고 한다. 그러니, 어떤 형태로든 나와 인연이 닿는 분들 중, 밥 한끼 제안받은 분들이라면, 나중에라도 꼭 연락이 닿아 서로 밥 먹으며, 못다한 이야기들 나누고 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의 삶도 무려 16년이 되어간다. 여전히, 나는 See you later! 를 함부로 내뱉지 않는다.

Thanks. Bye.

다시 볼 기약을 할 수 없다면, 나에게 이 이상은 무리이다.

아내는 이런 내가 굉장히 건조해 보일 수 있고, 싹퉁바가지로 보일 수 있다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내 입으로 뱉은 말은 지키고 싶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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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보면, 맡은 일이 내 성향과 맞지 않거나, 초심과는 달리 어느새 지쳐감에 따라, 열정과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못함으로 인해 침체되는 분위기가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

나 역시 뒤돌아보면, 2012년, 첫 로펌을 그만둘 때, 그러하지 않았던가? 회사의 방침, 의뢰인에 대한 대우 등 이루말못할 고민들이 하늘까지 닿았던듯 하다. 물론, 능력보다 더 많은걸 욕심내다가 주저앉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법무법인으로 전환한지 만 6년. 그 전 개인사무실까지 포함한다면, 만 8년간의 로펌 경영을 해오고 있는듯 하다. 철저한 분업을 통한 공동협업이다보니, 혼자서 모든걸 고민하는 부담은 없었지만, 그 기간 사이에 정말 많은 직원들을 보아왔고, 경험한 듯 하다.

그 중 정말 다시는 만나고 싶지않은 역대급이라 불리울만한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잃어버린 열정과 흥분 탓인지, 아니면 애초에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인지, 새로운 꿈과 희망을 쫓느라 손에 쥐어진 업무를 등한시 한 탓인지, 세상을 피해 사무실이란 공간에서 방어막을 쌓는데 여념이 없었기 때문인지, 한결같이 일 따위는, 의뢰인은, 안중에도 없었다 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은지.

사람은 남겨놓은 흔적들로 기억된다. 일을 맡겨준 의뢰인과의 인연 따위는 내팽개치고, 새롭게 일을 넘겨받을 동료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로 기억되는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앞서 말한 역대급 직원들이 여럿 있다.

다시는 만나고싶지 않다. 그들이 남겨둔 발자취의 악취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요즘같은 세상에 모를 수가 있나. 한결같은 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안쓰럽다. 그 주변인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될까봐.

세상살아가며 남녀간에 이런 상황이었다면, 이들은 소위 '쓰레기' 라는 평가로 도배가 되고도 남지않았을까?

남겨둔 발자취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원리/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생각한다.

작은 일 하나에도 충성을 다하고, 내가 가진 달란트를 쏟아부을 수 있는 마음가짐. 내일 당장 다른 곳에 가게 되더라도, 오늘에 열과 성을 쏟아부었음을 만인이 알 수 있는 그런 모습들.

인사가 만사란다. 정말 좋은 인연들만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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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숭미주의자가 아니다. 뼛속까지 한국인이고, 우리 아이들도 한국인으로서의 자기의식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여러가지를 가르치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한국 여행을 자주 가는건 별로. 같은 값이면 여러 곳 다니면서 추억거리들을 쌓는 재미를 더 좋아하니까. 게다가, 한국에서 다행히도 양가 부모님들이 자주 호주를 방문해주실 수 있어서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자라는 과정 중 영향으로 인해, 밑도 끝도 없는 미국에 대한 찬양과 미제선호 분위기에 '익숙한' 것은 사실이다. 왠지, 미국의 동향, 의견, 발언이면 무언가 그럴싸해보였다.

지금이야, 내가 뿌리내리고 살고있는 이곳 호주가 가장 좋다고 여기지만 말이다.

작년 말, 호주 동부를 휩쓴 산불파동은 사실 내 눈 앞에 펼쳐진 일은 아니었고, 마침 가장 절정을 찍는 시점에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기에 가슴 속 깊이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이토록 많은 이재민을 불러온 산불사태가 인재는 아닐까? 정부는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정도의 생각만 했었지. 만약, 우리집이 활활 불타오르는 상황이었다면 그 절망은 어떠했을까?

2020년 2월부터 슬금슬금 퍼지기 시작하던 우한폐렴. 3월부터는 겉잡을 수 없어지더니, 급기야 전 세계적으로 pandemic 이라 부르며, 국경봉쇄 또는 출입국 제한, retail 업계를 비롯하여 public gathering 의 금지 등의 전무후무한,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넘쳐나는 우울한 뉴스들과 갖혔다라는 느낌으로 인한 많은 이들의 감정적 동요는 소위, '술렁인다' 라는 표현이 무엇인지를 실감케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다. 사람의 지나온 경험으로는 감히 상상키 힘들 정도의 급박하게 돌아가는 실황들 앞에서 우리는 전전긍긍 외에 별달리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기껏해야, 집에서 방바닥 긁으면서 stay at home 을 준수하는 것 정도.

열흘 넘게 미국 전역을 들끓게하는 George Floyd 사망 사건은 과거 Martin Luther King Jr. 시절의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카리스마 가득했던 시위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고들 평가받는듯 하다. 시민들, 국민들의 이런 열망과 쌓였던 분노에 대해 현재 보여지고있는 리더쉽은...

이쯤에서 말은 아끼는게 정석.

미국이 이리 될 줄이야!

미국 변호사 라이센스 아래에 펼칠 준비를 하던, 미국 이민 practice 는 일단 당분간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어두어야겠다.

내가 미국 이민 업무를 추가하려했던 이유는 오로지 시장의 needs 때문이었는데.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언제 내가 보아왔던, 기대하고, 준비하던 그 needs 라는 것이 '미국' 이라는 곳을 대상으로 다시 활활 타오를지 기다려보아야겠다.

대마불사 라 했었는데...

초일류 국가라고 스스로 표명하고 표방하던 미국. 어떻게 이 국난을 극복해가는지 기대가 되고, 그 미래에 건투를 빈다.

protest... 
라틴 어원을 쫓아가서 보자면, assert publicly 를 뜻한단다. make a solemn declaration. 단지, 소요와 혼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결과를 화합 가운데 이루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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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체는 단순하다.

영어를 못하는 호주 변호사, 반면 한국어는 모국어이기에 할 줄은 안다. 어쩌면 운이 좋아, 한국어를 참 조리있게 잘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실, 현재까지 그런 직원을 보지 못했다. 영어를 못하면, 한국말도 말만 할줄 알았지, 처절하게 매너가 없거나, 앞뒤가 다르거나, 논리적으로 받쳐주지 못해서 결국에는 의뢰인의 원성만 사는 직원으로 결론 나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을 고용해야할까?

이민을 와서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서 정착을 해가는데, 모국어 수준에 가깝게 해당 언어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건대, 이곳에 와서도 한국어만 쓰면, 교민 지역사회에서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정말 대단히 많다. 그만큼, 이민이 보편화되고,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기반시설들이 필요에 따라 구축되고, 인터넷을 통한 통신의 용이함 등이 갖추어지다 보니 가능해진 일들이다. 물류, 교역이 쉬워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것이고.

고백하건대, 회사 업무의 과반 비중이 한국인 이민자들 (교민, 유학생, 취업파견인, 이민2세 등) 관련 일인지라, 한국어를 능통하게 쓸 수 있는 변호사가 정말 필요하다. 덕분에, 어쩌면 이곳 지역사회에서는 법대 출신 교민 또는 교민 자녀들이 일자리를 구하는데 있어서 우리 법무법인이 참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었다.

인사청탁에 준하는 문의들이 얼마나 빗발치는지... 

한국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본인의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특징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잊지말자. 이곳은 호주다. 호주에서 호주 법을 펼칠 수 있는 호주 변호사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어' 는 기본 중 기본이다.

주연을 뛰어넘는 조연이 바람직하지 않듯 (오해하지 말기를, 조연도 중요하다. 다만, 주연이어서는 안될 뿐) 이곳에서 변호사가 되고싶다면 영어능력을 한껏 키우기 바란다. accent 를 바꾸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은 나 역시도 뼈저리게 느끼는 부분이고, 평생 숙제임이 분명하기에,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서면 또는 구두로 내 의견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미묘한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고, 논쟁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이 없는 변호사라면, 생각을 다시 해보기를 정말 권한다.

일을 맡기는 의뢰인의 마음에 잠시 들 수는 있겠지만, 이 무대에서 당신은 인정받지 못할 것이고, 그 패배의 쓰라림은 고스란히 의뢰인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대리하는 representation 이라는 일, 그것도 legal representation 이라는 법률 대리인, 변호사에게 이런 가혹함을 이겨낼 능력이 없다면, 시작부터 자질이 없다는걸 시인해야된다.

이런 사람들이 이 업계에 있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다. 실력이 안되면, 노력이라도 하던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던지.

먹고 살기위해 변호사가 된 것이란 말인가? 뒷감당은 의뢰인에게 뒤집어씌우고?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감정적으로 발끈할 수 있는 일부 독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히 밝힌다. 영어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성공적인 이민생활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많은 분야들이 있고, 이민선배들이, 동료들이, 후배들이 이런 길들을 단단하게 밟아가며 훌륭한 선례들을 만들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이민자들이고, 영어 잘하고 못하고는 이들의 인격, 품성, 인간성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다만, '영어' 를 무기로 누군가를 대리하고, 대변해야하는 역할을 맡겠다는 사람이 함량미달임을 알게되고서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정도 책임의식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이 분야에 뛰어들겠다면, 그 결심을 재고하여야 한다. 책보고, 수업듣고, 시험문제 풀 수 있는 수준으로 누군가의 법적권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안일하달 수 밖에.

나는 오늘도 하루를 준비할 때, 더 나은 advocacy 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 때에도 지난 하루를 짚어보며, 반성과 더 나은 발전을 위해 고민한다. 적어도, 그런 변호사의 자세만큼은 일류라 자부한다. 그리고, 지난 십여년을 되돌이켜본다면, 내 영어는 accredited specialist 자격으로 법정에 서서 의뢰인을 대변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수 밖에.

오늘이 가장 최저점.

이 정도 자신감과 자부심이라면, 당장 이력서 보내주기 바란다. 함께 일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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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당신 호는 겸온, 겸손과 온유라 하고싶으시다고. 세상을 살아오면서, 겸손보다 나은 무기가 없고, 다른이들과의 이견을 풀어가는데, 온유만큼 강력한 효과를 불러오고, 화합을 도모하는 도구도 없다는 말씀을 그렇게도 자주 해주셨는데,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그 말씀을 이제야 알 듯 하다.

조직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제아무리 management 관련한 서적을 탐독하고, 그럴싸한 이론을 도입해보겠답시고 챠트를 그리고, OX 를 그어가며, 조직관리를 한다손 치더라도, 결국에 가서, 동료들, 부하들의 지지를 불러오고, 의뢰인의 믿음을 사오는데에는 겸손과 온유만한 것이 없더라.

그렇게,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감에 우쭐했었다. 회사의 성장과 규모,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인정이 마치 내 능력인양 자만을 했었던듯 싶기도 하다.

2018년 샹하이 출장에서 중국을 맛보고, 2019년 광저우 및 우한 출장에서 본격적인 회사의 청사진을 중국을 배경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내 능력이면 그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질줄 알고서.

인구 천만도시 우한에서의 메이져 로펌들과의 업무제휴, 호주 진출을 노리는 중국인 기업집단들의 이어지는 문의와 러브콜. 당장이라도 중국어를 배워놓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질듯 쫓기는 그 긴장감을 즐겼던듯 하다.

2019년 6월에서 7월로 이어지는 보름간의 출장, 그리고 2019년 하반기까지 비밀 프로젝트 하에 그렇게 2020년을 그리는 비장의 프로젝트들이 연일 이어졌었다. 그리고, 2019년 12월에 한달 간의 긴 휴가를 한국으로 다녀오게 된다.

2020년 새해가 열림과 동시에 중국을 끌어안고, 비상하는 일만이 남은 양.

호주로 귀국함과 동시에 들려오는 우한폐렴이라는 심상찮은 소식들은 마치 파장에 맞추어 공명이 점점 더 커지듯 걱정과 근심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아뿔싸.

인간의 힘으로 제어 못하는 것들, 예측하지 못하는 것들, 미처 예상치 못하는 것들은 널리고도 널렸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최고의 미덕이 겸손과 온유였다면, 세상을 대하고, 본인을 다스리는데 최고의 미덕 역시 겸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견고하되, 실력 따위에 대한 자만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의지에 대한 약속 정도여야 할 듯 하다.

자만하지 말아야겠다. 세상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우한폐렴으로 불리던 COVID-19 이 전 세계를 이렇게 휩쓸어가고, 덕분에 우한 프로젝트는 도대체 언제 성사 가능할지 앞일을 알 수 없게 될 줄 누가 알았더란 말인가.

삼국지의 주무대 우한. 양쯔강이 관통하는 그 멋진 도시는 불과 1년 만에 옛 추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겸손하고, 굳은 의지로 묵묵히 최선을 다해야지. 때가 무르익으면 그 열매를 따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이 즈음에서 내가 직원들에게, 그리고 의뢰인들께 이야기했던 한 토막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볼까 한다.

깜깜한 밤, 익숙하지 못한 길을 걸어 목적지로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같이 밤에도 불빛이 흔한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영화나 소설 속 묘사에서 우리는 시골의 그런 풍경들을 상상해볼 수 있죠.

 

지도를 갖고 그 길을 걷는것도 아니기에, 돌부리 하나도 조심해야하죠.
이 길을 어찌 다 갈꼬라며 한숨을 쉬는 것 보다는, 발걸음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해, 힘차게 땅을 딛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간다면, 결국에는 최선이라는 결과는 아닐지라도, 최악이라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준비하고, 헤쳐가야할 이 상황에 해법이 정해져있어서, 꽃길만 밟으며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선택과 노력을 다하는것.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해야할 일입니다.
그 끝에 우리는 최선이었냐, 차선이었냐, 최악이었냐, 차악이었냐를 따져볼 기회는 있겠지만, 그 과정 덕분에 우리는 배운게 있고, 후회가 없고, 미련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다음에 더 나은 도전과 결과를 가져올 든든한 경험을 갖게 되겠죠.

겸손을 담고, 노력하며,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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