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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3일 호주 땅을 밟고서, 1년 동안 푹 쉬었죠. 그리고, 구직활동을 했습니다만, 한국에서 마지막 포지션이 고급 포지션이었기에 그에 걸맞는 영어수준이 받쳐주지 않아, 한 6개월 가량 최종 인터뷰에서 고배를 여러차례 마셨죠.

그리하여, 2006년 7월에 있던 MAPKEE (Migration Agent Professional Knowledge Entrance Exam) 이라는 녀석을 치고, 이민법무사가 되었죠. 평생 공돌이인줄 알았었는데, 의외로 법에 쏙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2007년 6월 6일,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소위 동네 호주변호사를 만났는데, 이민법 전공 이민변호사라는 자의 수준이 한심한걸 보고서 결심하게 됩니다. 내가 변호사가 되고 말겠다고. 그리고, 극한을 보여주겠다고.

2008년 1월 법대 JD 과정에 입학하여, 1년 3학기 과정으로 2년 속성으로 JD 과정을 최우등 졸업하게 되고, PLT 연수과정을 진행할 때, 변호사로 첫 발을 내딛을 직장을 만나게 되었죠. 그리고, 참 감사하게 많이도 배웠고, 즐겁게 일했습니다. 다만, 2년 여 되는 시간 동안 내가 원했던 변호사로서의 방향과 맞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서, 2012년 5월 14일에 사표를 내고, 2012년 6월 2일에 지금 Park & Co Lawyers 에 합류 합니다. 제4번 직원으로.

2012년 하반기에 직원에서 바로 승격하여 Partner 를 달고, 2013년 법무법인으로 전환을 하며, 이 과정에서 공동 대표변호사 (Legal Practitioner Director) 가 되고, 2014년에 현재의 동업체제를 온전하게 구축하게 되었죠.

그렇게 앞만 보고 뛰면서, Accredited Specialist in Immigration Law 라는 변호사 최고의 영예를 갖게되었고, 개인적으로 목표하고 추구하던 꿈을 위해, 미국 UBE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여, Alabama State Bar 에서 미국 변호사로서 등록까지 하게 됩니다. 정말 바쁘고 소중하고, 보람찬 시간들을 보내왔죠.

법원 및 각종 Tribunal, 그리고 이민성, 보험사, 행정부 각 기관 등을 상대로 값진 사건과 사례, 실적들을 올린 것들로 치자면, 책으로 써도 몇 권은 나올만큼 열심히 해왔습니다. 모두 믿고 맡겨준 의뢰인들 덕분이지만, 그에 걸맞게 정말 최선을 다했죠.

IT 로 기술이민을 왔던 제가 우연찮은 인연들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좋은 동료를 만났고, 사업 파트너를 만났고, 멋진 직원들을 많이 만나왔습니다. 와중에 떠나보낼 이들은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군요. 남은 자가 더 귀한 법이니, 저는 뒤돌아 보지 않습니다.

호주 이민생활도 어언 벌써 17년 차군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호주에서 보낸 세월이 더 오래겠다싶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 앞으로도 그래야겠다 싶습니다.

아비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오다보니, 자녀들도 조금씩 커가며 보고 배운 것들을 토대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하나봅니다. 세상 헛살지 않았단 말이죠.

사족 한 마디를 하자면, 1993년 KAIST 입학을 하고, 우연히 93년 가을학기 개강 때 모집한 KUS (KAIST Unix Society - 당시에는 NeWS 라는 이름으로 포장 중) 에 가입을 우연히 하게 되었고, 그 이후 공돌이 끝판왕 인생을 2003년까지 살았었습니다. 한때는 당대 최고의 대한민국 해커라는 이름도 가져보았고, 각종 컨퍼런스와 정부 프로젝트, 그리고 간판급 프로젝트 매니져와 개발자로 상당한 대기업 및 정부 기관 프로젝트를 이끌었었죠. 물론, 조금 더 했었다면, 소위 보안컨설팅 관련하여 국제 표준 등에 걸맞는 자리를 꿰어찼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냥 대충대충 사는 건 성미에 맞지 않으니까요. 아마도 MBTI 로는 ESTJ 유형 (골치아픈 돌아이 전진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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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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